새누리당이 마침내 청와대가 지시한 ‘유승민 찍어내기’ 임무를 완수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 책임론’이란 명분을 던진 지 13일만에 자신들이 직접 뽑은 원내대표에게 ‘사퇴 권고’라는 집권여당 사상 초유의 결과지를 들이밀었다. 당사자인 유 원내대표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끝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로써 지난 2주간의 ‘유승민 정국’은 일단락 된 것일까.
일단 유 원내대표가 8일 원내대표직 사퇴를 공식화 하면서 당분간 당청 갈등의 불씨는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권 내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동안의 당내 분란은 내년 총선까지 이어질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 간 대혈투의 전초전에 불과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8일 오후 비공개 의원총회를 마치고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무실로 사퇴를 권고하기위해 들어가고 있다. [남궁진웅 timeid@]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원내대표 사퇴 권고를 도출하기까지) 표 대결은 피했지만 그동안 친박 대 비박 간 계파갈등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양 진영간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앞서 두 차례 총선에서 공천권 전쟁을 치른 만큼 이번 일로 당내에서 진영간 주도권 싸움은 불가피해졌다”고 전했다.
양측은 당장 후임 원내대표 선출을 놓고 제2라운드 대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선출 방식은 또 다시 분란을 야기하는 표 대결 대신 ‘합의 추대’를 하되, 이를 위한 물밑 신경전이 치열할 전망이다.
친박 측은 당·청 관계 복원 및 박근혜정부 후반기의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 친박계 중진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자는 입장인 반면 비박계는 유 원내대표를 희생양 삼은 만큼 더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이유로 비박계 진영을 앞세우며 대립각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대립 양상이 격화되면 추대는 물 건너가고 경선을 치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유승민 사퇴를 분기점으로 양측 모두 내년 공천 주도권 확보를 위해‘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자세로 결사항전에 나설 것이란 이야기다. (사진설명) 지난 2월 2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15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 의원총회에서 경선결과 발표 후 이주영 새누리당 의원이 원내대표에 당선된 유승민 의원을 축하하고 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timeid@]
여권에서는 후임 원내대표를 추대할 경우, 지난 2월 유 원내대표에게 패한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우선 거론된다. 이 전 장관도 추대될 경우 굳이 마다하진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비박 진영의 반발을 희석시키기 위해 유 원내대표의 경선 러닝메이트였던 원유철 정책위의장도 물망에 오르고 있다. 또 대구·경북(TK) 지도부가 없는 상황이 도래한 만큼 김태환, 주호영 의원도 후임 원내대표로 언급되고 있다.
어찌됐든 새로운 원내 지도부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로 인해 해결해야할 미션에 대한 부담도 한층 커지게 됐다. 당내 계파갈등을 추스르고 당청 관계 회복, 국회법 개정안 재의 무산으로 반발하고 있는 야당 또한 끌어안아야 한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새로운 원내 지도부는 누가 뭐래도 부담 백배인 자리다. 선임자가 어찌됐든 쫓겨나듯 밀려난 자리를 꿰차는 만큼 부담이 클 수 밖에 없다”면서도 “무엇보다 당 내홍을 하루 빨리 추스르려면 오래 자리를 비워둘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새누리당 당헌·당규에는 원내대표의 사퇴 후 일주일 내 후임을 선출하도록 했다. 늦어도 15일까지는 새로운 원내대표를 선출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만 당 원내대표 및 정책위원회의장 선출규정 3조 5항에 따르면 부득이한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선출 시기를 달리할 수 있다고 돼 있어 다소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추가경정(추경) 예산 등 7월임시국회 현안이 산적해 있어 여당 원내대표 자리를 마냥 오래 비워둘 가능성은 낮아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