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데스노트’, 잘 차려졌지만 메인 음식 없는 뷔페

2015-07-0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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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씨제스 컬쳐]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일본 만화가 오바타 다케시의 동명 인기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죽음의 공책’을 주운 뒤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악인을 처단하는 천재 고교생 라이토(홍광호)와 라이토의 행위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그의 뒤를 쫒는 명탐정 엘(김준수)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그렸다. 일본 굴지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호리프로가 제작해 지난 4월 도쿄에서 세계 초연했고 한국에 들어와 지난달 20일부터 국내 팬과 만나고 있다.

원래 제2 창작물이라는 것이 잘해야 본전이다. 원작의 작품성과 흥행 파워는 리메이크작의 비료이면서 동시에 부담이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1·2차 티켓 판매분 6만장을 순식간에 매진시키며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떨쳐냈다.

전회차 전석 매진은 사실 캐스팅이 완료됐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다. 국내 뮤지컬 배우 중 가장 강력한 티켓 파워를 지닌 김준수에, 빼어난 실력이 영국 웨스트엔드까지 소문이 난 홍광호를 한 무대에서 볼 수 있고 고정 팬을 상당수 보유한 박혜나 강홍석 정선아가 투입됐으니까.

남은 것은 작품성. 홍광호 김준수를 비롯해 모든 배우의 연기는 흠 잡을 곳이 없다. 배우들은 12권의 만화책을 2시간 30분 남짓한 뮤지컬로 줄이며 생긴 이야기적 구멍을 단단하게 조인다. 특히 홍광호의 활약이 눈에 띄는데, 정의를 갈망하던 고등학생이 “내가 선하다고 인정한 사람들만 살아남는다”고 외치는 살인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에 당위성을 부여하는 것은 극본의 탄탄함이 아니라, 배우 홍광호의 연기력이다. 김준수는 목을 쭉 빼고 구부정하게 걸으면서, 원작만화에서 보던 기괴한 몸짓을 그대로 구현해내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날카롭게 노래하면서 2차원의 엘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공연 내내 스산한 톤으로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을 노래하는 여자 사신 렘 역 박혜나의 연기와 노래는 더할 나위 없다. 개구지게 웃다가도 이내 살인 욕구를 드러내는 남자 사신 류크 역 강홍석은 ‘최고’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로 한국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프랭크 와일드 혼이 작곡을 맡은 만큼, 서정적이고 대중적인 음악도 즐기기에 무리가 없다. 단출하다고 지적받는 무대는 오히려 번잡스럽지 않게 살을 쪽 뺀 모습이라 온 신경을 배우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원작의 탄탄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보이지만 스토리적 결함이 없지는 않다. “원래 개연성 부족은 긴 원작을 짧게 줄이는 리메이크작의 숙명”이라며 아량을 베풀 수 있는 이유는 2시간 3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관객을 집중시키는 재미적 요소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아량으로도 넘어갈 수 없는 것은 홍광호 김준수의 대표곡 부재다. 공연장을 나오면서 강홍석 박혜나 정선아의 메인 넘버는 가슴에 남는데, 홍광호와 김준수의 대표곡을 떠올리기가 어렵다는 것은 통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가 뭐래도 ‘데스노트’의 주인공은 홍광호와 김준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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