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배용준과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현지 에이전트나 프로모터(기획자)가 전무한 상태였죠. ‘제가 배용준 매니저입니다’라고 했더니 ‘배용준 매니저가 이미 50명은 있을 걸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를 사칭해 계약을 하려는 사기꾼들이 있었던 거죠. 예컨대 5억원짜리 계약이 있다면 브로커들이 광고주에게 ‘10억을 주면 배용준을 섭외해 주겠다’는 식이었어요.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이후로는 영어와 일어, 한국어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통역을 두 명씩 붙여 더블체킹했죠. 배우가 아시아 투어 개념의 행사를 처음 할 때라 어떻게 하면 팬들이 좋아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팬들 중에 몇 명을 선정해 회의에 참석시키고 밤새 큐시트를 짰어요. 그래야 팬들이 원하는 콘텐츠가 나올 테니까요. 팬들 입장에서는 잊지 못할 추억이 아니었을까요?”
신드롬급 인기를 누렸던 배용준의 아시아 팬미팅은 놀랍게도 항상 적자였다. “티켓 가격을 올려 수익을 낼 수도 있었지만, 가격을 낮게 책정해 많은 팬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진정한 팬미팅”이라는 배용준의 생각 때문이다. 그 생각은 배우 김수현에게로 이어졌다. 기업에서 진행하는 팬미팅을 제외하고 자체 유료 팬미팅은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고. “수익을 내기 위한 고가의 팬미팅이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고 양 대표는 지적했다.
중국 팬미팅 이야기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자연스레 김수현에게로 넘어갔다. 김수현과 키이스트의 첫 만남은 어땠을까? “드라마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2009)에서 고수 아역으로 출연했을 때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연기할 때 눈빛이 좋아서 그 전 작품을 다 찾아봤어요. 큰 배우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부터 일을 함께하게 됐죠.”
양근환 대표가 뽑은 김수현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모든 작품이 전환점입니다.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로 처음 존재감을 알리고 ‘드림하이’로 주연으로 발돋움했고, ‘도둑들’로 영화배우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했죠. ‘해를 품은 달’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흥행 파워를 입증했고요. ‘별에서 온 그대’로 중국에 진출했으니까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그 작품이 대표작이 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입니다. 최종 선택은 김수현의 몫이죠. 연기에 대한 갈증이 많았어요. ‘드림하이’ ‘해품달’ ‘프로듀사’ 모두 김수현이 하고 싶었던 연기예요. 특히 ‘프로듀사’는 박지은 작가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김수현이 지질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결정하게 됐습니다.”
김수현의 성공은 양근환 대표의 심미안 덕일까? 아니면 남다른 전략 덕일까? 양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 가도 잘 될 친구였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가 누구를 키웠다는 표현을 싫어하기도 하고요. 김수현과 키이스트가 잘 맞아서 좋은 결과물이 나왔을 뿐 누가 누구를 키울 수는 없습니다.”
인기를 얻기도 힘들지만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양 대표는 “스타 본인이 가장 중요하다. 사건·사고가 없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멘탈도 중요하다. 힘이 든다고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자기 관리가 베이스인 셈”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키이스트를 굵직한 배우가 대거 속한 거대 엔터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3개의 자회사 KNTV(일본 한류 예능 전문채널), CONTENT K(드라마 영화 제작사), CONTENT N(게임 제작사)과 관계사 DATV(일본 한류 전문방송)를 거느린 ‘엔터 공룡’이 됐다. 업계는 키이스트를 ‣일본, 중국을 각각 대표하는 킬러 배우 보유하고 ‣드라마, 영화 제작 능력을 겸비했으며 ‣콘텐츠 수출 플랫폼 확보로 안정적 콘텐츠 공급이 가능하며 ‣킬러 배우를 기반으로 신규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엔터사라고 평가한다.
CONTENT K가 제작한 7월 방송 예정인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는 이준기, 최강창민 등 한류스타의 출연에 힘입어 회당 15만 달러에 일본으로 수출됐다. 올해 한류 드라마 중 가장 높은 가격이다. 일본 한류가 시들해진 현재라 더욱 괄목할 만한 성과다.
“단순히 한류라는 시장만 보며 콘텐츠를 기획하지는 않습니다. 되려 한류를 정조준했다가 국내에서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을 타산지석을 통해 배웠죠. 중요한 것은 양질을 콘텐츠입니다. 더 이상 스타 캐스팅도 흥행을 보장해 주지 않죠. 특정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아리라 보편적 정서의 탄탄한 극본이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 아베 정권이 들어서고, 한국 정부마저 강경책을 펼치면서 한·일 관계는 급속히 냉랭해졌다. 특히 엔화쇼크는 일본 한류의 직격탄이다. 중국도 마찬가지. 한국 콘텐츠에 수입에 대한 규제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다.
“일본 한류는 정치적 문제와 엔저 하락 등 여러 가지 복합적 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또 일본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혐한류 인식이 퍼지기도 했고요. 중국 한류의 장점은 실시간으로 높은 가격에 콘텐츠가 팔린다는 거였죠. 중국인에게는 매력적이었을 겁니다. 예컨대 ‘별에서 온 그대’를 보고 한국으로 여행을 오면 전지현 패션, ‘치맥’ 문화가 똑같이 유행하고 있으니까요. 국내 시장에도 긍정적이었죠. 드라마 시장뿐 아니라 다른 사업까지 동반 성장이 가능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종영 후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적어도 4개월은 걸립니다. 한국에서 이미 열풍이 다 사그라든 뒤에 중국에서 터지는 거죠. 불법 콘텐츠 유출은 말할 것도 없고요.”
양 대표는 이 위기를 어떻게 바라볼까. 조급함은 없었다. “교류라는 것이 일반적일 수 있나요. 한쪽은 받기만 하고 한쪽은 주기만 하는 것이 모순이죠. 좋은 콘텐츠를 많이 만들고 쌍방으로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안전한 선택을 하기 마련이에요. 신인 배우, 신인 작가에 대한 지원이 마련돼야 합니다. 한류를 국가적 사업으로 본다면 이러한 정책적 지원은 필수죠. 문화 수익은 계속 커지고 새로운 콘텐츠의 중요성은 나날이 높아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