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남궁진웅 timeid@]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감독 이해영·제작 청년필름 비밀의 화원) 개봉 전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엄지원은 시종 새로운 작품, 새로운 캐릭터를 만난 것을 즐거워했다.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되게 새로웠어요. 완전 새로운 이야기였죠. ‘페스티벌’에 이어 이해영 감독님과 두 번째 작품을 함께하는 거예요. 장르도 모르고 한다고 결정했죠. 나중에 슬쩍 물어보니 미스터리라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엔 ‘미스터리?’하고 의아했는데 시나리오를 받고 그 새로운 느낌에 반했어요.”
‘경성학교:사라진 소녀들’은 일본의 침략으로 조국을 잃고 비극으로 얼룩진 1938년, 외부와 완벽하게 단절된 경성의 한 기숙학교에 얽힌 미스터리를 그린 작품이다. 극 중 엄지원은 비밀을 간직한 기숙학교의 총 책임자 교장 역을 맡았다. 그는 다정하게 웃는 얼굴과는 달리 미스터리하면서도 섬뜩한 광기를 숨기고 있는 교장으로 첫 악역에 도전했다.

[사진=남궁진웅 timeid@]
“인물에 대해 설계도를 촘촘하게 그렸어요.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착 드러내는 부분에 중심을 두고 싶었어요. 교장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계하면 좋을까, 많이 고민했죠. 영화 초반과 영화 후반의 옷 색깔이 다르다든지 입술 색깔도 더 짙어진다든지…. 비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히스테릭한 면을 더 드러낼 수 있게 노력했죠. 혼자 그림을 그리듯 설계를 해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엄지원의 지난 필모그래피에는 “인물을 설계하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캐릭터”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폭발하는 감정을 유지하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적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유지하고 그려내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다.
“어떤 면에서 교장은 광기 어린 열정을 보이잖아요.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소녀를 대하는 교장의 태도만 봐도 섬뜩한 면이 있죠. 교장은 그런 맺고 끊는 것에 대해 깔끔한 여자라고 생각했어요. 수술하는 것처럼 깨끗하게 절단하는 인물인 거죠. 연기하는 감정 힘들었지만 다양하게 할 기회가 주어진 게 재밌고 즐거웠어요.”
히스테릭한 교장이라는 인물을 더욱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보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은 엄지원의 ‘설계’가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교장이라는 캐릭터를 더 사실감 있게 표현했다.
“일본어를 자유자재로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어요. 아침 9시에 일어나서 일본 드라마를 보곤 했어요. 나중에는 자막 없이도 들리는 거예요(웃음). 물론 현장에 일본어 선생님도 계셔서 발음이나 억양을 많이 잡아주셨어요. 하지만 선생님이 연기를 가르쳐주실 수는 없으니까 대사를 하고 선생님이 틀린 부분만 지적해주는 정도가 됐죠.”
엄지원은 일본어로 감정을 연기하기 위해 일본 드라마를 수십 번 시청했다. 특히 기무라 타쿠야가 출연하는 모든 드라마를 섭렵하며 일본 배우들의 발음이나 감정을 익히려고 했다.
“일본 배우들 특유의 분위기는 배제하려고 했어요. 교장은 한국 사람이니까 과장된 일본어나 감정은 빼고 싶었거든요. 기무라 타쿠야의 물 흐르듯 하는 연기가 제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사진=남궁진웅 timeid@]
“잘하고 싶어요. 늘 새로워지고 싶고요. 이 영화도, 앞으로 나올 영화 ‘더 폰’도 새로워서 시작한 거예요. 힘들지만 묘한 설렘과 정복하고 싶은 열정을 주거든요.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해보고 싶다는 열정을 주는 것 자체가 좋아요.”
확실히, ‘경성학교’는 새롭다. 여성 캐릭터가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스타일에 있어서 그 ‘새로움’을 배가한다. “오랜만에 여성 영화를 본 것 같다”고 말을 건네자 그는 즐거운 듯 긍정한다.
“그동안 연기하면서 여성이 하나의 오브제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그 안에서도 어떻게 오브제처럼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고 고민했었죠. 이번엔 그런 인물이 아닌 이야기 때문에 만들어진 캐릭터잖아요. 맞춰서 들여온 인물이 아니고, 구색을 갖추기 위한 캐릭터가 아니니까. 그런 부분에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재밌었던 작업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