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을 기념하며 12일 서울 압구정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유준상은 ‘풍문으로 들었소’를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작품”이라고 정의하며 법무법인 대표 한정호를 처음 만난 순간을 회상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대사에 담겨있는 것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처음 대본을 읽자마자 느껴졌던 톤으로 30회를 끌고 갔죠. 다른 느낌은 안 나오더라고요. 완벽주의자 엘리트라는 것에 초점을 맞춰 발음 하나에도 예민하게 굴었죠 ‘인간으로서’를 ‘인간으로써’라고 읽는다거나 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요. 대본이 나오면 코디부터 매니저까지 제 개인 스태프가 모두 보여 정확한 발음과 장단음을 찾기에 바빴죠. 방송 내내 그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즐겁기만 한 작업은 아니었다. “넓이 300평에 작은 것 하나까지 모두 최고급이었던 세트장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뒷짐을 지게 됐다. 현장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순간까지도 내게 ‘대표님’이라며 허리를 숙였다. 초반에는 항상 의기양양하고 즐거웠는데 한정호가 붕괴하기 시작하는 후반부에서는 너무 힘들었다. 밖에 나가면 모든 게 다 내 마음대로 되는데 집에만 오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서 답답했다”고 토로했다.
‘풍문으로 들었소’는 강박적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여타의 작품과는 달리 단 한 명의 피붙이도 남지 않은 집에서 새 가신과 함께 사는 한정호의 뒷모습으로 끝을 내렸다. 신선한 충격이다. 유준상은 처음부터 엔딩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감독님이 항상 ‘너는 이 저택에 혼자 남게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고는 했어요. 막상 대본을 받아보니 새 가신들과 함께더라고요. 한정호의 고독감이 더욱 잘 표현된 것 같아요. 그 장면에 지문이 ‘복도 끈을 향해 걸어가는 정호. 어느 지점부터는 제자리걸음처럼 보인다. 죽지도 늙지도 않는 조화처럼. 그게 벌이다’라고 적혀있었어요. 정말 문학적이지 않나요? 정 작가님이 쓴 대본은 대본이 아니라 문학 같아요. 물론 저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괴로웠지만요.”
유준상은 마지막 장면을 찍으면서 촬영이 끝났는지 모른 채 홀로 300평의 저택을 거닐며 애처럼 울었다. “고된 작업이었어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울 만큼요. 그래도 소중한 작업이었어요. 일기장에 ‘연기공부 제대로 하고 있구나’ 하고 적었다니까요.”
20년째 연기를 하면서도 아직도 연기 공부 중인 유준상은 아직도 청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