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주진 기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포비아(phobia)가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다.
지난 달 20일 첫 확진환자가 발생한 이후 한달 가까이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메르스 확산세는 전국민을 집단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방역후진국’이라는 오명 속에 국격도 경제도 추락하고 있다.
'무능한 정부가 메르스보다 더 무섭다'는 민심 앞에 박근혜정부의 국정시계는 올스톱됐다. 국민에게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강요하는 정치권력의 무능함은 불과 1년 전 세월호참사의 교훈을 까맣게 잊어버린 게 아니냐며 여론의 몰매를 맞고 있다.
정부가 만시지탄(晩時之歎) 컨트롤타워 가동으로 방역에 총력 대응을 하고 있지만 여건은 계속 악화되고 있다.
정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등 메르스의 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총력 대응체제에 들어갔지만 메르스 여파로 내수가 극도의 부진에 빠지는 등 실물경기가 침체되면서 경제혁신의 동력은 실종됐다. 이 때문에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하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8일 ‘메르스 확산으로 인한 경기 둔화’ 보고서에서 “메르스가 확산돼 장기화할 경우 경제적 충격이 내수 서비스 산업 전체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사태가 비교적 조기에 진정된다 하더라도 최소 1개 분기 정도에 걸쳐서 경제 주체들의 심리 및 소비 활동 위축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메르스 사태가 한 달 이내인 이달 말까지 종결되면 한국의 GDP 손실액은 4조425억 원, 다음 달 말까지 이어지면 9조3377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최악의 경우 사태 발발 3개월째인 8월 말까지 간다면 20조922억 원의 손실을 입는 것으로 추산됐다.
집권3년차 들어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려면 경제활성화 대책과 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도 줄줄이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당초 10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거쳐 발표될 예정이던 '노동시장 개혁 추진계획'과 '판교 창조경제밸리 마스터플랜'이 나란히 한 주씩 연기됐다. 기획재정부는 이달말 발표할 예정이었던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다음달로 연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노동개혁의 경우, 정부·여당이 노조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포함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밀어 붙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노사정 대타협은 거의 물 건너가고 대립과 갈등만이 난무할 공산이 크다.
대학구조개혁을 목표로 내세웠던 교육 개혁은 시동도 걸지 못하고 있고, 금융 부문 구조개혁은 상반기에 핀테크 활성화 대책 등을 내놨지만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의 도발 위협과 급변하는 동북아정세 속에서 우리의 외교도 갈 길을 잃었다.
지난 7일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 집단토론이 예정됐으나, 급작스럽게 잡힌 메르스대응현장방문으로 연기됐다. 네 번째 한미정상회담이 걸려있던 미국방문 일정도 전격 연기됐다.
특히 광복70주년 분단70주년을 맞은 올해에도 남북관계가 좀처럼 풀리지 않으면서 박 대통령이 천명한 ‘통일대박론’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선언, 유라시아이니셔티브는 공허한 메아리 처지에 놓였다.
정치 분야 역시 국회법 개정안과 황교안 총리 후보자 인사청문을 둘러싼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 간 대립 구도로 한랭 정국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의 경제활성화법안들도 여전히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정치권만 탓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크다. 박 대통령과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늘 국정 위기를 자초해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사난맥상, 세월호참사, 정윤회 문건 파문, 연말정산 세금폭탄, 성완종리스트 파문, 메르스사태까지 국정시계를 멈추게 한 사건들의 가장 큰 원인은 국민과의 소통 부족과 신뢰 추락이라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집권3년차 ‘골든타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국정 동력의 원천인 신뢰 회복을 위해 전력투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