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자국 통화 강세(환율 하락)라는 ‘수렁’에서 당분간 헤어나오게 됐다. 달러화 강세라는 ‘단비’를 만났기 때문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내 기준금리 인상‘ 발언이 달러화 반등에 기폭제가 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작년 10월 이후 12곳이 넘는 중앙은행이 통화 절하를 통한 경기 부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27일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반영하는 달러인덱스는 지난 14일 93.113을 단기 저점으로 무려 4포인트 이상 올라 97을 훌쩍 넘어섰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의 그렉 깁스 전략가는 “전 세계 몇몇 중앙은행들이 최근 달러화의 강세를 환영하고 있다”며 “9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가장 유력한 가운데 달러화는 추가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가 됐다”고 말했다.
◆ 호주·뉴질랜드·캐나다, '금리 완화 궤도' 벗어날까
호주 달러는 옐런 의장의 발언이 나온 후 미국 달러화에 대해 1.9% 내린 0.7748달러를 나타냈다. 캐나다 달러도 1.9% 하락한 1.2430에 거래됐다. 뉴질랜드 달러는 26일 두 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호주와 뉴질랜드의 금리가 완화 궤도에 있지만 경기 부양을 위해 미국 달러화 강세를 더 선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앞서 지난 5일 호주중앙은행은 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렸다. 당시 글렌 스티븐스 호주중앙은행 총재는 “호주 달러화를 추가 절하할 가능성이 크고 또 필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뉴질랜드중앙은행은 작년 6월 기준금리를 올린 후 동결하고 있지만 금리 인하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30일 기준금리 동결 후 그래미 휠러 뉴질랜드 중앙은행 총재는 “무역 가중(미국 달러화 가치 변동) 기준으로 뉴질랜드 달러는 장기 경제 펀더멘털(경제 기초 체력)을 참작해도 정당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캐나다도 사정은 비슷하다. 유가 하락과 제조업 약세가 캐나다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어 인접국인 미국의 경기 회복이 필요한 상황이다.
캐나다중앙은행은 지난 1월 약 4년 만에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나 캐나다 달러의 약세를 유도하려는 인상을 주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몬트리올은행의 담당 책임자인 스티븐 갈로가 말했다. 캐나다중앙은행은 “최근 글로벌 금리 급등과 캐나다 달러의 부분적 상승이 우려된다”며 “기준금리를 현행 연 0.75%로 유지한다”고 27일 밝혔다.
◆ 금리 인하, 한국·일본 “이제 그만”…중국·인도 “계속 내려”
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은 금리 인하에 섣불리 나설 수 없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란 전망에 자금 유출 우려가 커진 데다 금리 인하로 가계 대출이 늘어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추가 완화 가능성이 작아졌다는 진단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일본은행(BOJ)이 다소 물가 상승세가 둔화해도 매우 급하게 추가 금융완화에 나설 가능성은 작다”면서 “추가적인 엔저 가속화도 부담”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엔 환율은 7년 10개월 만에 최저치인 123엔대로 올랐으며 125엔까지 오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미국의 금리인상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중국은 독자적인 금리 완화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인민은행은 이르면 6월에 지급준비율이나 기준금리를 인하할 전망이라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4월 광의통화(M2) 증가율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완화정책의 촉매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인도 역시 통화 완화 정책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 대다수는 인도중앙은행이 다음달 2일 기준금리를 25bp 낮은 7.25%로 조정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즈호은행은 “이례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질 금리가 여전히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으므로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는 외국인 투자금 이탈, 무역 적자 등에 대비해 외환 보유액을 대거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인도의 외환보유액은 3404억달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