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이 활기가 넘쳤다. "국내에선 싫어할 아이템이죠." 박여숙 대표가 김준 작가(48)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옆에있던 작가가 바로 "인정,인정"이라고 했다.
갤러리스트와 작가, 서로 이 무슨 자신감일까. 화려한 색감으로 유혹하는 작품에 답이 있다.
다리와 다리들이 뱀처럼 꼬여있고, 가슴과 배꼽을 드러낸 맨 몸들이 뒤엉켜있다. 기괴한 형상이지만 이상한 아름다움에 끌리는 건 타투(tatoo·문신)때문이다. 현란한 색과 꽃으로 장식된 타투는 '금기'를 넘어서게 한다.' 환상적인 괴기성'이다.
일명 '문신 작가'로 통하는 김준은 바로 그 지점, '그로데스크(grotesco)'함을 노렸다고 했다. 몸, 살갗,가죽이 공존하는 작품을 통해 작가는 "물질의 유혹을 견딜수 있나?, 네 욕망을 멈출수 있니?"라는 메시지라고 했다.
'문신은 변신'이다. 몸에 잉크를 주입해 새기는 문신은 작가의 말대로 욕망을 부채질한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누구는 패션의 승부로, 또 사랑의 맹세로 몸들을 엮는다. 육신의 고통과 쾌락, 상처와 욕망, 제도적인 억압과 해방이 문신이라는 행위에 녹아있다.
처음엔 살덩어리 오브제위에 문신을 새겼다. 하위문화의 이미지들을 적나라하게 그려내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 문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천으로 씌운 스펀지 형태위에 안료 칠을 하고 박음질을 한 살덩어리들. 작품은 충격은 줬지만 팔리진 않았다. 옥탑방과 지하작업실을 전전하자 살덩어리 작품들은 짐이 됐다.
"다 버렸어요. 몇개만 남겨놓고, 푹신푹신해서인지 노숙자가 깔고 자더라는 소리도 듣긴했죠."
처치 곤란 짐이된 작품에 대해 고민하다 만난게 3D 작업이다. 2000년이후 시작된 3D작업은 그를 가볍게 했다. "guest방만 하나 있으면 되고, 가내수공업이 가능하겠다 싶었죠."
디지털로 영토를 확장하자 무한도전이었다. 그림 그리듯 컴퓨터 화면에서 상상의 날개를 폈고, 현란한 기괴함은 몸을 해체하고 이으며 날로 도발했다.
몸에 문신은 사물(도자기)에 문신으로까지 이어졌다. '문신 작가'에서 '도자기 작가'로도 이름을 알려, 국내외(자카르타·이천)도자기비엔날레까지 불려다녔다.
하지만 작가는 여전히 '몸'에 탐닉한다. 실제 모델의 몸은 아니다. 디지털에서 인공 피부의 세계를 주물럭거린다.
3D Max라는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3차원상에 붓 대신 픽셀로 만들어졌다. 인체 모양에 피부를 입히고 그 위에 문양을 새겨 넣어 표현된 몸들은 진짜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이미지일뿐이다. 매트릭스이거나 시뮬라크라(simulara)가 빚어내는 몸의 유희, 욕망의 논리다.
'국내에서 싫어하는 아이템' 덕분으로 해외를 무대로 활동해온 작가는 박여숙화랑과 10년 전속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국내활동에 나선다.
30여년간 화랑을 운영한 박여숙대표는 "카메라를 여는 순간, 아 되겠다"싶은 감이 왔다고 했다. "한점도 못판다고 생각하고 전시를 시작하지만 10년동안 함께 가겠다"며 마케팅에 자신감을 보였다.
김준 작가는 오는 22일부터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에 국내에서 발표되지 않은 신작 ‘Somebody’ 시리즈의 디지털프린트 및 영상 작업을 선보인다. 가짜 살덩어리 오브제 위에 문신 초기작들도 볼 수 있다.
‘Somebody’는 문신이라는 구체적인 행위나 이미지에서 더 나아가 절단된 몸들의 현란한 색감과 형태들이 이루는 자유로운 배치와 구성이 돋보인다. 외곽선들의 자유로운 운용과 종종 여유 있게 자리한 여백들은 추상적인 회화의 느낌까지 더한다.
절단된 몸의 피부에 악어나 타조가죽, 뱀피나 송치 등 사치품을 대표하는 가죽문양과 동양적인 민화 이미지나 일상적인 만화 이미지가 뒤섞인 문양을 입히고, 해체된 조각난 몸들을 연결하고 포개놓는 재배치를 통해 작가 특유의 조형 감각을 드러낸다.
사람들의 무의식에 새겨진 욕망을 화려하면서도 징글맞게 드러내는 작가가 미술시장에서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전시는 6월21일까지.(02)549-7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