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수식을 일체 빼버리고 신속하고 거친 묘사로 사실만을 쌓아 올리는 수법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대표적이다.
제68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된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제작 사나이픽처스)의 장르는 하드보일드 멜로다.
범인을 잡기 위해선 어떤 수단이든 다 쓸 수 있는 형사 정재곤(김남길)은 과거 돼지발정제를 범죄자의 애인에게 발라 남자친구의 신변을 털어놓게 만들기도 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돼지나 말 등 동물용 발정제가 최음제로 인식되면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 도구로 오용되기도 했다.
조직의 돈을 빌려 이를 빌미로 한 때 두목의 여자였던 김혜경은 텐프로 출신이다. 김혜경을 사랑하게 된 박준길은 김혜경에게 빚 도촉을 한 황충남을 죽이고 수사망을 피해 도망 다닌다.
김혜경에게 황충남을 죽였다고 고백한 박준길은 도주 자금을 요구하고, 혜경은 이를 위해 집도 팔고, 변두리 단란주점 마카오로 들어간다.
이런 저런 거짓말을 하지만 ‘촉’이 좋은 김혜경은 다 간파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바닥에 들어온 지 10년 만에 빚만 5억. 척하면 척이다.
영준은 혜경의 옆에서 준길을 기다린다. 저녁에는 혜경과 마카오에서, 새벽에는 혜경의 집 앞에서 잠복근무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준길이 혜경의 허름한 빌라로 찾아오고, 영준은 한바탕 잠자리를 가진 후 잠든 준길을 깨운다. 조용히 4~5층 정도의 높이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게 한다.
영준은 확실한 우위의 상황에서 붙지만 준길의 강인한 체력과 싸움 기술에 밀린다. 다시 시작된 잠복근무. 그러던 중 준길은 중국으로 넘어갈 계획을 세우고 혜경에게 자금 준비를 부탁한다.
영준은 혜경의 곁에 있으면 있을수록 그녀의 기구한 삶에 ‘측은지심’을 느낀다. 조직의 오른팔 격인 민영기(김민재)가 혜경에게 치근덕거리자 참지 못하기도 한다. 또 준길 때문에 저당을 잡힌 고급 진주귀걸이를 대신 찾아준다. 어쩌면 영준은 혜경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이혼 후 전 부인에게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자신이나, 남자에게 휘둘려 이리저리 제 삶을 살지 못하는 혜경, 어딘가 닮아 있다.
오승욱 감독은 BGM을 최대한 줄였다. 음악으로 관객들의 감정을 흔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도연과 김남길의 하드보일드적인 감정에 몰입할 수 있다.
전도연과 김남길의 대사 만이 조용히 울리던 영화관 안에서 관객의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다.
전도연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왜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지 알 수 있다. 술에 취해 영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진짜 술을 마신 것만 같다. 꾸부려 앉다가 주춤거리며 흔들리는 모습 하나에도 디테일이 살아있다. 이를 악물고 빚독촉을 하는 모습에서 ‘핏대’마저도 연기로 보인다.
김남길은 조용하게, 묵직했다. 큰 움직임을 줄였지만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확실하게 들어냈다. 마치 농구선수가 페이크를 쓰면 수비수가 움찔하듯, 김남길의 연기에 텐션과 이완을 반복했다. 왜 전도연이 김남길에 대해 “상대방을 빛나게 하는 좋은 배우”라고 평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눈빛, 표정, 말투, 걸음걸이마저 ‘영준화’ 했다. 전도연의 메소드 연기를 빛나게 했다. 김남길도 빛났다.
‘멜로 배우’에 등극한 박성웅. 비열하지만 김혜경을 사랑하는, 하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여성을 희생시켜야하는 다면적인 박준길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곽도원은 말이 필요 없으며 김민재 역시 매끄럽게 연기했다.
청소년관람불가로 오는 27일 개봉. 러닝타임은 118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