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울 시내 한 은행 지점에서 고객들이 신규 통장을 개설하고 있다. [사진=아주경제 이정주]
아주경제 홍성환·이정주 기자 = 금융사고 예방을 위해 은행들이 내놓은 대책이 되레 고객 불편만 가중시키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새로 통장을 만드는 데 각종 서류를 요구, 신규 개설 자체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특히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마다 요구사항이 달라 고객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이 대포통장을 예방하기 위해 신규 통장 발급 절차를 잇따라 강화함에 따라 각 은행별로 신규 계좌를 개설할 때 다양한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이전까지 신분증만 있으면 통장 발급이 가능했지만 최근 대포통장을 활용한 금융사기가 빈번해지자 이같은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B은행에서는 한 창구 직원이 "최근 한 달 이내 신규 통장을 개설한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단기간에 다수의 계좌를 개설할 경우 모든 금융권 시스템 상에서 팝업창이 뜨고 추가 개설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 직원은 또 원칙적으로 직장이나 거주지가 아닌 다른 지점에서 통장을 발급받기 힘들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은행인데도 지점마다 요구 사항이 제각각인 경우가 많았다. C은행의 경우 한 지점에서는 직장인 통장을 만들 때 명함을 요구한 반면 인근 다른 지점에서는 명함 없이도 신규 통장을 개설해주겠다고 했다.
상황이 이렇자 소비자들의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 소득이 없는 학생, 취업준비생이나 주부들의 경우 증빙 서류를 준비하기 어려워 신규 통장 개설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다니는 김모씨(27)는 "용돈을 관리하기 위한 통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은행에서 개설할 수 없다고 거절당했다"면서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을 은행들이 지지 않고 왜 고객에게 떠넘기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같은 대책에도 불구하고 대포통장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피싱사기에 이용된 대포통장은 2012년 3만3496건, 2013년 3만8437건, 2014년 4만4705건으로 증가했다.
이와 함께 300만원 이상 이체된 돈을 현금자동입출금기(CD·ATM)에서 찾을 경우 지연 인출시간을 현행 10분에서 30분으로 늘린 조치도 소비자 불편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금융국장은 "당국의 대책으로 시민들이 통장 개설에 필요 이상의 불편을 겪고 있다"며 "사건이 터지면 매번 소비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