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규하 기자 =세계 반도체 장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스(AMAT)와 세계 3위 도쿄일렉트론(TEL)의 합병이 무산된 배경에는 우리경쟁당국의 역할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적 공룡 업체의 합병을 놓고 ‘경쟁이 심각하게 제한될 수 있다’는 우리 측 판단이 작용하는 등 글로벌 인수합병(M&A)처리에 대한 평가가 높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7일 세계 1·3위 반도체 제조장비 업체인 AMAT와 TEL이 합병계약을 철회하면서 심사절차를 마무리한다고 28일 밝혔다.
이들은 약 2조8000억원(AMAT 2조원·TEL 8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장비를 국내로 판매하는 등 반도체 제조회사의 장비 수입 비중만 약 70%로 추산되는 공룡기업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AMAT과 TEL이 제출한 자진시정 방안을 놓고 삼성전자(한국), SK하이닉스(한국), 인텔(미국), TSMC(대만), 마이크론(미국), 도시바(일본), Lam Research(미국), Dainippon Screen(일본), Hitachi High-Technologies(일본) 등 이해관계자들과 의견 후 연구용역 등 심도 있는 검토에 들어갔다.
아울러 공정위는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DOJ), 중국 상무부, 일본 공정위 및 대만 공정위 등과 대면회의, 전화회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심사를 진행해왔다. 공정위의 심사 결과는 반도체 장비시장의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먼저 결합의 경우 통상적인 수평결합 및 혼합결합 뿐만 아니라 혁신경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했다. 반도체 장비 가격인상, A/S 중단 등의 부작용 우려와 모든 반도체 전공정 장비의 취급으로 끼워팔기 등을 통해 경쟁사업자 배제 가능성도 높다고 봤다.
뿐만 아니다. 두 회사의 결합은 ‘혁신저해’라고 결론 내렸다. 차세대 장비 개발 능력이 가장 뛰어난 두 회사가 결합할 경우 차세대 장비 개발 지연 등 기술 혁신 경쟁이 저해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박재규 공정위 시장구조개선정책관은 “결합 당사회사가 모두 외국회사이고 국내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글로벌 M&A라는 점을 감안해 외국 경쟁당국과 긴밀히 공조했다”며 “외국 경쟁당국 간 긴밀한 국제공조를 통해 이뤄 낸 성과로 AMAT·TEL이 기업결합을 철회하는 등 국내 반도체 장비 시장의 경우 현재와 같은 경쟁 상황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공정위의 심사보고서 발송 이후 외국회사가 기업결합을 철회한 두 번째(2010년 세계 2·3위 철광석 생산업체인 BHP빌리턴과 리오틴토 간 기업결합) 글로벌 M&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