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서윤 기자 =유럽행을 꿈꾸며 리비아를 떠난 배에 몸을 실은 난민들이 지중해에 수장되는 참극이 잇따르자 유럽연합(EU)이 마침내 나섰다. EU는 오는 23일(현지시간) 긴급 정상회의를 열어 리비아 연안에 EU 병력을 파견하는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올해 들어서만 최소 1600여명에 달한다. 최근 5년 동안에는 7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18일 밤 지중해에서 일어난 리비아발 난민선 전복 사고 이후에도 인명 피해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18일 밤 난민선 전복 사고도 애초 700여 명이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생존자가 “선박에 최대 950명이 타고 있었다”고 진술하면서 국제사회에 충격을 더했다. 탑승자 가운데 300명은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갑판 아래 문이 잠긴 짐칸에 갇혀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현재까지 구조된 사람은 50여 명에 불과하다. AP통신은 “지중해 최악의 참사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리비아에 EU 병력을 파견하고 휴전 감시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의했다고 EU 외교 소식통이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합동회의와 별개로 베를린에서 비정부기구들과 진행한 회의에서 “유럽의 관문인 지중해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목숨을 잃어가는 희생자들이 다시는 없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며 “이런 참사는 우리 가치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유럽을 향한 난민들의 이동은 2011년 급증했다. 당시 시민군이 무아마르 카다피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면서 서부·동부·남부로 나뉜 리비아의 지역·종족 분파 갈등이 고조됐고 무력 충돌로 이어져 무정부상태에 빠진 리비아의 치안과 경비가 허술해졌다. 이 틈을 타 더 나은 삶을 위해 유럽행을 갈구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이 리비아로 몰려들었다.
리비아는 이탈리아 남부 람페두사까지 바닷길로 18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다. 카를로타 벨리니 '세이브더칠드런' 이탈리아 대표는 이들이 목숨을 걸고 위험한 탈출을 감행하는 이유에 대해 “군 징집, 내전, 정치적 탄압, 빈곤, 기독교인 박해를 피해 유럽으로 피신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중해 비극’이 이어지는 데도 EU는 무관심했다. EU는 지난해 11월 밀입국을 부추긴다며 ‘마레 노스트룸(우리의 바다)’라는 이탈리아의 지중해 난민 구조 작전에 대한 자금 지원을 감축하고 인력도 900명에서 65명으로 줄였다. 그 뒤 불법 이민자를 막는 데 중점을 둔 ‘트리톤(Triton)’ 작전으로 대체했으나 구조 범위가 훨씬 줄어들어 난민들의 죽음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엔난민기구(UNCHR)에 따르면 지난해 사상 최고로 많은 20만7000명 이상의 난민이 유럽에 가려고 지중해를 건넜으며 이 과정에서 최소 3400여 명이 사망했다. 현재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도피하려고 대기하는 난민은 50만~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고 EU 국경수비대는 추정하고 있다.
난민 문제에 관한 EU의 ‘대응 부재’는 유럽 전역에 만연한 ‘반(反)이민’ 여론 때문이다. 다음 달 총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는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우파 정당은 ‘반이민’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미 선거를 치른 프랑스와 핀란드에서도 이 정책을 내건 극우정당이 선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 미사에서 지중해 난민 사고 소식을 언급하며 “국제사회가 신속하고 단호한 대책을 마련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국제사회의 대응은 포괄적이고 공동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