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괴벨스'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북한의 실제 중 실세였던 김기남이 지난 9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3기 3차 회의에서 주석단이 아닌 방청석 세번째 줄에 앉아 그의 위상 변화가 처음 감지됐다.
정치국 위원인 그는 방청석 세번째 줄에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과 함께 앉았다. 종전까지는 항상 주석단의 맨 앞줄을 차지했지만 이날은 '차관급' 인사들과 함께 방청석에 앉은 것이다.
단순히 노동당 비서가 아닌 정치국 위원이 주석단이 아닌 방청석에 앉은 경우는 드문 일이다.
북한 매체는 주석단에 앉은 고위간부 15명을 일일이 소개했으나 그의 이름은 빠졌다. 그가 방청석에 앉은 모습도 나오지 않아 불참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위 간부들이 외국 방문이나 업무상 이유로 주요 행사에 불참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앞서 최고인민회의에서 방청석으로 밀려났던 그의 불참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다.
김 당비서는 1966년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시작으로 노동신문 책임주필, 1990년대 선전선동부장과 선전담당 비서로 활약하면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정당성 확보와 우상화에 '공헌'한 실세다.
그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 씨와도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때문에 그의 업무 수행과 관련해 질책 차원의 강등 조치 정도가 취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실제 김정은 체제 들어 김기남 대신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김 제1위원장을 밀착 수행하면서 선전분야를 사실상 총괄하고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김 당비서가 선전선동 업무에 소홀한 점을 보이자 그의 위치를 고려해 제1부부장 정도로 강등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만약 그렇다면 이는 간부들의 충성심을 높이기 위한 차원이기도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 좌천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아흔에 가까운 그의 나이가 맞물리면서 자연스럽게 활동 반경을 좁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가 최고인민회의 전날인 지난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22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주석단에 앉았다는 점에서 그의 행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