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 "등기임원 연봉공개, 정부-기업의 과도한 타협"

2015-04-17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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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인터뷰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이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몰아주기 문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궁진웅 timeid@]


아주경제 김지나 기자= 지난달 31일 대기업 등기임원들의 연봉이 줄줄이 공개됐다. 여기에는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오너일가의 연봉도 있었다.

일부 오너 일가는 연봉 공개를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발 빠르게 전환했다. 현행법상 미등기임원은 연봉을 공개할 의무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경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은 "임원 보수를 공개하는 이유는 보수를 받는 임원이 보수에 적합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함"이라면서 "보수를 많이 받는 사람이 비등기란 이유만으로 공개 대상에서 빠지는 것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15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서 만난 박경서 원장은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인터뷰 중 작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임원 보수 공개 제도가 갖는 한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개정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주식시장에 상장한 대기업들은 등기임원이 연봉 5억원 이상 받을 경우 사업보고서에 보수를 공개해야하는 의무를 진다.

최대한 많은 기업의 정보를 수집해 주총 안건을 분석해야 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특성상 등기임원들의 보수 공개에 대해 발 벗고 환대할 만도 하지만 박 원장은 환호보단 우려를 앞세웠다.

박경서 원장은 "지배구조 원칙상 기업의 책임 권한을 가진 자는 등기임원이 되는 것이 당연한 원칙이고, 정부도 재벌들에게 이를 권장해 왔다"면서 "이에 재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등기임원으로 전환해 왔는데 정부에서 연봉을 공개하겠다고 나서면서 하나씩 등기임원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원장은 이어 “임원을 등기화 하는 것은 기업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법적으로 책임 소지를 따질 경우 굉장히 중요한 법적 근거가 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너들이 비등기로 전환하는 것은 임원 연봉공개를 떠나 추후 굉장히 큰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박 원장은 임원들의 연봉공개를 등기임원에 한정하지 않고 등기와 미등기 가리지 않고 상위 연봉자 보수를 공개하도록 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 원장은 또 우리나라 오너 기업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총수 일가 소유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지목했다.

한 회사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100% 자회사 형식으로 회사를 설립해 일감을 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총수 일가 등의 이름으로 계열사를 세워 일감을 몰아준다면 이것은 일종의 '배임'이란 것이 그의 주장이다.

박 원장은 "오너 기업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천문학적인 돈을 총수 일가 소유의 계열사로 빼간다"면서 “이것은 우리나라 기업의 독특한 성향으로, 외국에선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바로 주주대표소송을 당하게 된다"고 전했다.

주주대표소송이란 기업의 경영진이나 이사진의 부정행위로 피해를 입은 주주가 이들을 상대로 제기하는 손해배상 소송이다. 이 때 소액주주가 주주대표소송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주로 상당량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대표소송을 주도하게 된다.

박 원장은 “우리나라는 구조상 기관투자자들이 기업들와 각종 이해관계에서 주로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주주대표소송을 거는 경우가 드물다”면서 “기관투자자들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선 펀드 가입자들이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속한 기업에 기관투자자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는지 끊임없이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펀드 가입자가 자신의 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를 감시하고, 기관투자자는 투자한 기업이 제대로 된 경영을 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며 기업은 결국 주주 눈치를 보며 투명한 경영을 하게 되는 선순환 고리를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기관투자자들은 참석률이 저조한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등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매년 두 날짜에 집중되는 대기업들의 주주총회, 민간 기관투자자들의 낮은 주총 안건 반대 비율 등은 풀지 못 한 문제로 남아있다.

박 원장은 “최근 주총에서 주주가 경영진이 내 논 의안에 반대하며 외부 안건을 내는 ‘주주제안’ 건수가 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라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민간 기관투자자들이 주총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비율은 1.5%에 불과하고 주총 개최일 역시 두 날짜에 전체 기업의 65%가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다수 주주가 기업에 아무 목소리를 내지 않고 소수 지분을 가진 특정 이해관계자만이 경영권에 개입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 지배구조의 치명적인 약점"이라면서 "선진 자본주의로 나가기 위해선 보다 적극적인 주주들의 경영진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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