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소나무 보내기

2015-04-13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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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늦도록 너를 보내고
싸락눈 내리는 소리쯤에서
시작된 불면증

잠들 수 없어 종일 날품을 팔고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는 날
둘이 앉아
죽을 만큼 막걸리를 마시고
너는 가지 끝을 스쳐간 바람에 아프고
나는 바람으로 떠난 사람들을 그리다
어느새
나는 살고 소나무가 죽었다


언 발로 겨울을 나는 너를 위해
생땅에 괭이질을 하며
나는 산속에 살다 저절로
도사가 된 털보한테 들은 주문을
틀림없이 전했다 기도를 했다


막걸리를 먹어야 살 수 있다고


오십 몇 년 도시의 언덕을
들짐승처럼 떠돌던 나도 막걸리로 살아
겨울을 나고 있는데
그깟 바람을 앓아 마디마다 야윈 손가락
한잔 막걸리도 못 비우고
겨울 속으로 스쳐 떠나고 너는


네가 떠난 빈자리에서 난
또 불면증이 토할 듯 도져
봄을 맞는 보라빛
제비꽃을 심어야겠다.


벌써 만 5년 됐다. 소나무 두 그루를 얻어 마당에 심기로 했다. 주변에서 소나무는 살리기가 쉽지 않다며 하도 겁을 줘 신경이 쓰였다. 전문가에게 부탁했더니 바쁜 철이라 약속 잡기도 어렵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주변 도움을 받아 직접 해보기로 했다. 인부 두 명을 사서 나무 굵기에 한 다섯배 정도 넓이로 분을 떴다. 분이 깨지면 소나무가 살 확률이 낮아 정성들여 동여맸다. 가지를 솎아 전정도 했다. 소나무는 시청 산림과로부터 반출증을 발급받아야 옮겨갈 수 있다. 반출증을 받고 소나무 상차가 시작됐다. 나무가 커 들 수도 없고 내리는 것도 생각해 카고크레인을 이용했다.
포크레인과 크레인 기사와 소나무를 옮겨와 끙끙 거리며 심고 있는데 앞집 어르신이 도와주러 오셨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나무 심기를 무사히 마쳤다. 워낙 까다로운 성품이라 살리기 힘들다며 수시로 막걸리를 뿌려주라 했다. 그래서인지 5년은 푸릇푸릇 잘 살았다. 그러다 작년 가을부터 비실대더니 겨울을 나며 한 그루가 기어코 죽었다. 봄이 돼도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나무 보내기 [사진= 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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