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영화 ‘목포는 항구다’로 주목을 받더니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 출연하면서 얼굴을 알린 배우 박철민(49).
그는 1995년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시작으로 ‘꽃잎’ ‘박봉곤 가출 사건’ ‘이재수의 난’ ‘킬리만자로’ ‘불후의 명작’ ‘번지 점프를 하다’ ‘하면 된다’ ‘신라의 달밤’ ‘취화선’ ‘신부수업’ ‘김관장 대 김관장 대 김관장’ ‘화려한 휴가’ ‘7광구’ ‘오직 그대만’ ‘오싹한 연애’ ‘코리아’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후궁: 제왕의 첩’ ‘몽타주’ ‘히어로’ ‘열한시’ ‘노브레싱’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다.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뉴하트’ ‘한성별곡’ ‘베토벤 바이러스’ ‘돌아온 일지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 ‘성균관 스캔들’ ‘무사 백동수’ ‘구암 허준’ ‘감격시대: 투신의 탄생’ ‘호텔 킹’ ‘하녀들’ 등 드라마도 박철민의 활동 무대이다.
‘떴다방’ 사장 철중(박철민)은 수금이 안되는 어머니들의 반지라도 뺏어와 수금을 하라고 윽박지르면서 일범을 다그친다.
8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만나 영화와, 연기 철학에 대해 들었다.
“끝나고 할머니, 어머니께 안부전화 한통이라도 한다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지요. ‘내가 손자였지? 아들이었지? 엄마가 있었지? 할머니가 있었지?’라고 느낀다면요. 가족을 찾아보게 하려는 뜻이 담긴 영화니까요.”
“사실 각박한 사회잖아요. 돈이 최고로 꼽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이죠. 홍보관, 일명 ‘떴다방’이 어쩔 때는 어르신들의 안식처가 되고, 놀이터가 되고, 휴식처가 되는, 그런 공간을 만들어낸 인물인데 그런 상황에서 이익이 없으면 윽박지르고 잔인하게 행동하는 인물이죠. 어찌 보면 동정과 연민이 갈 수도 있는 캐릭터 같아요. 절대악이 아니라 더 재미있게 다가갔습니다. 소시민이었지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랄해지는 인물. 집안이 어려운 일범을 춤추게 만든 인물이죠.”
박철민은 ‘약장수’에 러닝개런티로 출연했다. 대신 지분을 받아 제작비 대비 흥행에 성공하면 불우이웃을 돕기로 결정했다. ‘또 하나의 약속’ 이후 또 하나의 선행이었다.
“드라마는 출연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거의 없죠. 상업영화에 출연하면 충분히 먹고 마시고 살 수 있고요. 친하고 고마운 사람을 만나 소주 한 잔 살 수 있고, 애들이 갖고 싶어하는 물건이 허황된 것이 아니면 사줄 수 있고, 학원도 보내줄 수 있으니까 제작비가 적은 작품이지만 매력적인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거죠. 다행히 ‘또 하나의 약속’이 수익이 나 ‘기부’가 현실화 됐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박철민은 40만 관객 돌파시 10만 명마다 제작사로부터 1000만원의 개런티를 받아 기부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박철민의 과거 얘기를 안 할 수 없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을 겪었던 그는 “연기는 제가 좋아하는 일이었기에 선택을 했었고 즐거웠다. 과일장사를 하면서도 무대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더 힘들게 무명으로 있었다면 일범처럼, 홍보관 더 심한 곳에서 생계를 꾸리려고 했을 수도 있다. 지금은 다행히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다”며 웃었다.
평소 애드리브로 유명한 박철민. 어떤 캐릭터든 ‘박철민화(化)’ 시켜 자신만의 캐릭터로 승화시켰다.
“냉정하게 말해서 대사를 잘 못 외워요. 대사를 외우면서 그 캐릭터를 다듬기도 하고, 만들어내기도 하고, 색칠을 다시 하곤 했죠. 입체적으로 만들려고도 했고요. 외우는 과정이 정말 기니까 다양하게 비틀고, 바꾸고, 뒤집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애드리브가 생겼죠. 철중이 홍보관에서 물건을 부시는 장면도 연습을 하면서 감정이 바뀌더라고요. 누군가는 5줄 대사를 50분 만에 외우는가 하면 저는 2시간은 걸리는 수준이죠. 7살 때 트럭에서 떨어져 뇌세포가 좀 죽은 것 같아요(웃음).”
이 마저도 웃음으로 승화시킨 박철민은 현장을 정말 사랑했다.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에 무한 애정을 쏟아냈다. 18회차로 끝난 ‘약장수’는 제작비가 적은 작품이다. 만듦새로 봤을 때 4억원이란 제작비는 터무니없어 보였다. 시간은 곧 돈이기 때문에 촬영을 길게 할 수 없었다. 배우들은 사전에 충분히 대본을 숙지하고 촬영에 임했고, 조치언 감독은 2~3번만에 ‘오케이’를 외칠 수 있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죠. 4억원 대 2300억원이 맞짱을 뜨는 거죠. 사실 저희는 버스, 잡지에 광고도 못해요. ‘어벤져스2’가 멋진 오락영화라면 우리는 엄마, 아빠, 할머니에 대한 영화죠. 멀티플렉스 측에서 온전하게 한 관만이라도 내준다면 ‘어벤져스2’에 작은 어퍼컷이라도 날릴 수 있지 않을까요?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영화가 있다면 우리처럼 사회가 숨기고 싶은 아픈 구석을, 민낯으로 드러내는 영화도 있는 법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박철민에게 연기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었다.
“다양한 감정들을 교류하는 것. 분노도 나누고, 애절함도 나누고, 웃음과 즐거움도 나누는 그런 게 연기가 아닌가 생각해요. 저의 표정과 몸짓, 말로 희노애락을 나누는 것. 관객이 웃으면 저도 즐거워요. 가슴 아픈 연기를 했을 때 관객이 실컷 울고, 그로 인해 치유가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한편, 성경 속 다윗은 골리앗을 상대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