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의 시골편지]봄날의 기억

2015-03-3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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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래 OK시골 대표(시인)]


겨우내 사랑방서 왕골자리만 매던 아버지는
살구나무 울타리 봄볕 하염없이 겨운 날 아침
묵은 두루마기 다려 날개로 입고 중절모는 화관
느릅나무 큰 서낭당 고개 돌면 한나절의 기다림
봄날의 장날은 봄꽃으로 그리 피고

황토길 봄바람에 지척지척 녹던 장날
한나절 기다림도 나비 날개 위서 저물면
앞산서 실눈 뜨는 별꽃 닮은 별
서낭당 느릅나무 저녁 어스름 귀신돼 흔들리고
아버지 손에 든 고등어 두 손 어스름에 흔들리고
아버지 두루마기 자락은 저녁달빛에 흔들리고

봄바람 장보아 무겁던 등짐
봄에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의 귀가길

그리운 봄날

--

어릴 적 시골서 자랐다. 면소재지 장마당에서는 오일마다 장이 섰다. 겨울은 추워서 장다운 장이 서지 못하다 봄볕이 무르익을 때면 큰 장이 섰다. 눈 속에 묻히고 추위에 방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사랑방서 왕골자리만 매고 계시던 아버지는 봄바람에 황토길이 지척지척 녹을 초봄의 장날이면 장을 보러 집을 나섰다. 그 때쯤의 장날은 한해 농사를 위한 씨앗도 준비하고 비료나 농약도 알아봐야 하는 등, 물건을 사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을 만나 정보를 얻는 날이었다. 그러다 친구분들을 만나 얼큰하게 약주에 취해 저녁 어스름이 돼서야 돌아오시곤 했는데 가족들은 그런 아버지가 언제나 오실까 신작로를 수시로 내다봤다. 아버지보다 아버지 손에 들린 과자며 과일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때 약주에 취해 비틀거리며 고등어 한손 들고 저 멀리서 비틀거리며 오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요즘도 시골에서는 오일장이 선다. 시골에 내려와 집 짓고 전원생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시골장터의 추억으로 장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여행 삼아 장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본다. 시골 장날을 즐기는 것도 전원생활의 큰 재미다.

봄날의 기억 [사진=김경래 OK시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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