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동욱 기자 =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처음 이뤄진 우리 정상의 1984년 국빈 방일시 일본은 일왕(日王)의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하다고 인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1984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일본 총리의 전년도 공식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무궁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원경 외무부 장관은 같은 해 2월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를 별도로 만나 이 계획을 공식 통보했다.
9월 초 2박3일 일정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우리 요구에 대해 주한 일본 대사는 본국 보고 후 3월 17일 "국빈으로 방일을 환영한다"면서 9월6∼8일 방문 일정이 좋다고 회답했다.
이후 우리 정상의 첫 국빈 일본 방문의 의제를 놓고 양측은 본격 교섭에 들어갔다. 첫 국빈 방문인 만큼 일왕의 과거사 언급 문제가 주요 관심사가 됐다.
정부는 '무궁화 계획 대일 교섭 지침'에서 일왕의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해 "방일의 대전제이며 한일관계 미래상 정립의 전제이므로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감정 등을 감안, 최대한 강한 어조로 반성을 확보해야 방일 자체에 대한 국민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 유감 표명 및 깊은 반성 내지 통감, 금후의 겸허한 자세" 등으로, 발언 형식으로는 "공식 발언 문서화 또는 최소한 만찬사에 포함"을 각각 입장으로 정했다.
외무부는 이후 작성된 '무궁화 계획 참고사항' 문서에서 일왕의 반성에 대해 "식민지 시대 울분 청산"이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일 관계 특수성과 민족감정을 고려할 때 유감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본측도 "천왕(일왕)에 의한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고 우리 정부는 파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왕 발언을 외교적 교섭 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취했으며 언급 내용과 방법 역시 품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행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반성은 틀림없이 적절히 처리할 것임을 표명하였으므로 더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면서 "과거사 문제가 교섭 쟁점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줘선 안된다"고 지시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반성이 우리측에 대한 일본의 양보나 선심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상의 방일이 가까워지면서 일왕의 과거사 발언과 관련해 일본 언론에서는 일왕이 '시이나' 선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언론을 통해 여론의 반응을 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이나선은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무상이 1965년 2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본 조약에 가서명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과거 불행한 과거에 연유한 한국 국민의 반일 감정에 대한 우리측의 설명에 대해 "그같은 과거관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힌 것을 뜻한다.
우리측은 일본이 방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도 일왕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수준의 과거사 언급을 할지 일본이 확인하지 않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국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비공식으로 조속히 발언 내용을 통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은 우리 정상의 국빈 방문 일정(1984년 9월6∼8일)이 시작되기 전날 일왕의 만찬사 등을 우리측에 통보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9월6일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 양국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식민 지배의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우리나라와 관련한 과거사 발언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당국자 논평을 통해 "천왕이 우리 국가 원수를 대면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외교부가 30일 공개한 외교문서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관계부처 회의를 통해 1984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일본 총리의 전년도 공식 방한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추진하는 '무궁화 계획'을 수립했다.
이원경 외무부 장관은 같은 해 2월 9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주한 일본대사를 별도로 만나 이 계획을 공식 통보했다.
9월 초 2박3일 일정으로 방문하고 싶다는 우리 요구에 대해 주한 일본 대사는 본국 보고 후 3월 17일 "국빈으로 방일을 환영한다"면서 9월6∼8일 방문 일정이 좋다고 회답했다.
정부는 '무궁화 계획 대일 교섭 지침'에서 일왕의 과거사 반성 문제에 대해 "방일의 대전제이며 한일관계 미래상 정립의 전제이므로 반드시 있어야 한다"면서 "국민감정 등을 감안, 최대한 강한 어조로 반성을 확보해야 방일 자체에 대한 국민의 납득을 구할 수 있다"고 입장을 정리했다.
구체적으로 발언 내용에 대해서는 "과거의 불행한 역사에 대한 솔직한 인정, 유감 표명 및 깊은 반성 내지 통감, 금후의 겸허한 자세" 등으로, 발언 형식으로는 "공식 발언 문서화 또는 최소한 만찬사에 포함"을 각각 입장으로 정했다.
외무부는 이후 작성된 '무궁화 계획 참고사항' 문서에서 일왕의 반성에 대해 "식민지 시대 울분 청산"이란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일 관계 특수성과 민족감정을 고려할 때 유감 표현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일본측도 "천왕(일왕)에 의한 과거사 언급은 불가피한 것으로 본다"고 우리 정부는 파악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왕 발언을 외교적 교섭 사항으로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취했으며 언급 내용과 방법 역시 품위를 유지하는 선에서 행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일본 측이 반성은 틀림없이 적절히 처리할 것임을 표명하였으므로 더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다"면서 "과거사 문제가 교섭 쟁점이 된 것 같은 인상을 줘선 안된다"고 지시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반성이 우리측에 대한 일본의 양보나 선심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이지 않도록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 정상의 방일이 가까워지면서 일왕의 과거사 발언과 관련해 일본 언론에서는 일왕이 '시이나' 선을 고려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이 언론을 통해 여론의 반응을 보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시이나선은 시이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일본 외무상이 1965년 2월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는 기본 조약에 가서명한 후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과거 불행한 과거에 연유한 한국 국민의 반일 감정에 대한 우리측의 설명에 대해 "그같은 과거관계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며 깊이 반성한다"고 밝힌 것을 뜻한다.
우리측은 일본이 방일을 일주일 정도 앞둔 시점에서도 일왕이 어느 자리에서 어떤 수준의 과거사 언급을 할지 일본이 확인하지 않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국내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비공식으로 조속히 발언 내용을 통보해줄 것을 요청했다.
일본은 우리 정상의 국빈 방문 일정(1984년 9월6∼8일)이 시작되기 전날 일왕의 만찬사 등을 우리측에 통보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은 9월6일 만찬에서 "금세기의 한시기에 있어 양국간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은 진심으로 유감이며 다시는 되풀이 돼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식민 지배의 상징적 존재인 일왕이 우리나라와 관련한 과거사 발언을 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당국자 논평을 통해 "천왕이 우리 국가 원수를 대면해서 과거에 대한 반성을 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