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죄송합니다, 손님.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지난 21일 오전부터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에 위치한 샤넬 매장 앞에는 구매객이 긴 줄을 만들었다. 한산한 다른 명품 매장과 다르게 샤넬 매장에만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한참 전부터 기다리다 지친 손님이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느냐"고 묻자 직원은 "10~15분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노 세일'(no sale)을 고수하며 콧대 높은 모습을 보여온 샤넬이 지난 17일부터 클래식과 보이샤넬, 2.55 빈티지 등 대표 핸드백의 가격을 11~23% 인하했다. 715만원에 판매되던 빈티지 미디움은 600만원, 770만원이던 리지백은 652만원, 클래식 점보는 715만원에서 60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보이샤넬 미디엄의 경우 681만원에서 524만원으로 낮췄으며, 612만원이었던 스몰 역시 470만원으로 내렸다.
그동안 지역 간 가격 차이를 용인한 샤넬은 유로가치 하락으로 대륙 간 가격 편차가 벌어졌고, 구매력 있는 소비자는 유럽으로 '원정 쇼핑'까지 나서자 '가격 인하'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일각에서는 계속되는 경기 불황에 샤넬마저 자존심을 버렸다고 판단하고 있다. 샤넬은 가격 인하로 매출액을 높이겠다는 생각이다.
갑작스러운 인하 정책에 바쁜 건 직원이었다. 매장은 가격 인하가 시작된 17일 이후 방문객이 평소의 3배 이상, 매출은 2배 이상 뛰었다. 워낙 고가품이라 구매 결정이 쉽지 않음에도 매장을 나가는 손님 손에는 쇼핑백이 가득했다.
고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가격이 인하된 모델은 대부분 판매가 끝났다. 남아있는 제품도 꾸준히 판매되고 있었다. 언제쯤 구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빨라도 2~3주는 기다려야 한다. 인기 제품의 경우 5월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부 손님들은 가격 인하 전 구입한 가방을 들고 와 환불을 요구했다. 가격 인하 보름 전(3월 2~16일) 고객에게는 사용하지 않은 제품에 한해 가격 차액을 환불해주거나 크레딧 카드를 주는 방침이 있다. 하지만 그 전에 구매한 고객은 며칠 사이에 100만원 이상을 얹어 가방을 구입한 것이어서 항의가 계속됐다.
특히 그동안 샤넬의 높은 브랜드 가치를 보고 구입해온 고객들 사이에서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어 할인 없는 비싼 가격에도 핸드백을 사왔는데 샤넬이 스스로 브랜드 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백화점 관계자는 "매출 추이는 아직 더 지켜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인상만 해오던 샤넬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면서 국내에서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