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강규혁 기자 ="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간에는 호텔 근처에도 가지 말라는 말이 있었어요. 괜한 오해를 살 수 있다고.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여성 (벤처)사업가들이 활동하는 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해요. 이 장벽을 빨리 없애 후배 여성기업인들이 사업하기 좋은 사업 환경을 만들 생각입니다"
이영 여성벤처협회장은 지난 한 달 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 2월 여성벤처협회 신임 회장에 취임하며 서울 서초동의 협회와 구로디지털단지의 테르텐 사무실을 번갈아 오가야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벤처기업, 특히 여성이 최고경영자(CEO) 또는 의사결정권을 갖고 기업활동을 주도하는 여성기업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도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7년 501개였던 여성벤처기업 수는 2014년 말 2393개로 4배 넘게 증가하며 양적인 성장도 달성했다. 일각에서는 협회가 지금껏 '추대'라는 방법 대신 '선거'를 통해 신임 협회장을 선출한 것을 두고 여벤협의 위상이 그만큼 강화됐기 때문 아니겠냐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물론 수치로 보면 이제 여성 기업들은 우리 사회에 연착륙했다고 볼 수 있어요. 여성 대통령 시대에서 여성 리더에 대한 수요와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면서 자연히 기회의 폭도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여성 기업인들이 기존 패러다임에서 동등한 입장에서 경쟁할 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전혀 다른 문제에요.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한 말이죠"
이 회장은 인터뷰 진행 줄곧 '유리천장'이라는 말을 계속 언급했다. 단순히 한 기관장으로서 계산하고 내뱉은 의식적인 발언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실제 체험하고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한 여성기업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아직도 여성기업이라고 차별받는 경우가 있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요. 그 정도까지 다양한 지원을 해 줬는데 여성기업이라고 특별히 어려울 게 있겠냐는 의미죠. 하지만 이는 일종의 사회적 착시 현상일 뿐이에요"
그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여성과 여성기업인이 겼는 어려움과 현실에 대해 작심한 듯 털어놨다.
"여성 임원이나 CEO의 비율은 OECD 최하위 수준이고, 여성들의 창업 비율도 마찬가집니다. 재미있는 통계가 있어요. 최근 소위 고학력 경단녀의 벤처 창업 비중이 40%에 육박합니다. 기업이나 팀플레이를 요구하는 곳에서 이들 여성 인력과 함께 일하는 걸 꺼려하기 때문이에요"
여성 기업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방안이 잇따르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창출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정부는 1000억원 이상의 여성 벤처가 탄생할 수 있도록 2017년까지 500억원 규모의 여성벤처펀드를 조성, 전방위적인 여성 벤처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여성 펀드의 투자 비율은 15% 내외이고 평균 수익률도 높지 않다.
여성기업 전용 연구개발(R&D) 자금도 신설됐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무엇보다 100억원 규모 내에서 한 기업당 1년에 최대 1억원 투자에 그치다보니 실효성을 갖기란 어렵다는 이 회장의 지적이다. 당초 정부 예산안에는 없던 예산을 배정하다보니 구체적인 지원기준 등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비록 제반여건이 성숙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역설적으로 협회가 시대에 맞는 미션을 수행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협회를 중심으로 브랜드와 홍보 마케팅을 강화하고, 중국을 중심으로 한 해외 판로 구축을 추진하려고 해요"
우수한 기술과 생산기반을 보유하고도 '팔 곳'이 없어 고민하는 여성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회장의 복안은 공동 브랜드다.
5개 기업을 선발해 협회 고유 브랜드인 '코브와(KOVWA, Korea Venture Business Women’s Association)'라는 타이틀로 중국 시장에 자리매김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13일에는 중국 IZP 그룹과 해외직구사이트를 통한 중국 짙출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해당 기업은 중국 온라인 인터넷 해외직구사이트 3위 업체인 하이쉔 닷컴을 통해 중국 전역에 소개되며, 3~5%라는 파격적인 판매 수수료 제공받는다. 그는 앞서 자신이 대표를 맡고 있는 테르텐의 일본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시장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한 바 있다.
"여성 CEO들에게 개인 브랜드를 높여야 한다고 매번 주문합니다. 지금까지는 제조업 중심의 패스트-팔로우가 한국 경제의 주요 매커니즘이었다면, 앞으로는 크리에이티브를 통한 무형의 산업군에서 성장동력을 키울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만이 창의적이다'라는 소리가 아니에요. 선수가 한 명(남자)인 것보다는 두 명(남성과 여성)인 게 좋다는 뜻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 기업들의 수익 창출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여건 마련이 시급합니다"
정부가 집권당이 바뀌더라도 기존의 정책은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독일의 예를 들며, 현재 추진 중인 여성기업 관련 정책이 보다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유지가 될 필요가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협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과 로드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보다 많은 여성기업인들이 성공하려면 개인적인 성과 달성도 좋지만 생태계 전체가 점프업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의성에 기반한 소프트웨어 디자인, 지식서비스 기반 컨설팅, 선진국형 아이템 확보 등 보다 실효성 있는 인프라 구축과 플랫폼 형성에 전력을 쏟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