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수입사가 참여하는 석유전자상거래 거래 물량의 대부분이 사실상 정유사로부터 공급받은 물량이기 때문에 정유사 과점시장의 경쟁을 유도해 기름값 안정화를 꾀하겠다는 정부의 제도 도입 취지는 퇴색됐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허울뿐인 수입사가 정유사 공급물량으로 거래하면서도 정부의 석유 수입부과금 환급 혜택을 받고 있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는 논란이 예상된다.
업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10일 “요즘 석유 수입사는 수입제품의 경쟁력이 없어 거의 정유사로부터 물량을 받아 석유전자상거래 시장에 내 놓는다”며 “수입되는 석유제품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수입석유제품 공급확대를 통한 석유제품 전자상거래의 활성화 및 석유시장의 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수입산에 대한 관세 감면 등 다수 혜택을 제공해왔는데, 한시적인 지원이 종료됨에 따라 경쟁력을 잃은 수입사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자상거래에 참여해온 대표적인 수입사는 이지석유, 페트로코리아, 세동에너탱크, 남해화학 등인데 세동에너탱크는 지난 1월 경영난으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기도 했다.
정부는 정유사의 과점 구도를 깨기 위해 각종 세제 혜택을 주며 석유 수입을 장려했지만 국내산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불거져 혜택을 줄이게 됐다. 현재 전자상거래상 수입산 석유제품에 대한 혜택은 리터당 8원의 수입부과금 환급만 남은 상태다. 이는 전자상거래에 참여하는 물량에 한해 정유사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수입산의 이점이 되지 못한다. 여기에 정유사들조차 적자를 보는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수입사들 역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자상거래의 기름값 인하 효과도 의문이다. 지난해 10월 김태환 새누리당 의원은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등 4대 정유사가 2013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 1년간 전자상거래를 통해 판매한 휘발유 평균 공급가격이 리터당 1774.4원으로 평균 배송비 리터당 7~8원을 더하면 장외 가격인 1780.2원보다 비싸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지난 1월 정유사 장내 가격과 장외 가격 차이는 세동에너지탱크 이탈의 여파로 경유가격이 리터당 1.6원밖에 나지 않았다. 휘발유 가격 차이 역시 같은달 14.2원으로 크지 않았고, 그 전달엔 1.1원에 불과해 시장가격 견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전자상거래시장 거래 물량의 50% 이상은 협의매매로 이뤄져 제도 도입 목적인 경쟁매매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경유는 1월 경쟁매매가 전체거래량의 45.7%, 휘발유는 46.8%를 차지했다. 협의매매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사전에 오프라인에서 가격을 결정한 뒤 실제 거래는 거래소 석유현물시장을 이용하는 방식이다. 주로 정유사가 전자상거래 공급물량의 50% 이상을 협의매매로 거래한다.
이처럼 수입사 물량은 줄고 정유사 비중이 높아질 수록 제도 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전자상거래 총 거래량은 2억9984만리터로 전년동기(2억2436만리터)대비 33.6%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정유사의 거래 비중도 56.9%에서 84.6%로 높아졌다. 장외 시장과 마찬가지로 정유사가 주도하는 형태가 되고 있다. 수입사가 시장에서 완전 이탈해 가격 견제기능이 없어지면 장내 가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전자상거래 거래 물량이 늘어남에 따라 정부는 전체 석유시장의 약 10% 비중을 달성한다는 당초 목표를 채웠지만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나온다. 정유업계 등은 당초 수입산이 국내산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반대해왔었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산에 대한 역차별 특혜를 줄이자마자 도태되기 시작한 것은 애초에 국내산에 비해 수입산 제품의 경쟁력이 없었다는 것”이라며 “정유사가 수천억원의 적자를 보는 형편에 국민들의 기름값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여주기식 정책보다 과도한 유류세를 먼저 재검토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