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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선 대전현충원 현충과]
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기미년 삼월 일 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의 하나로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선열아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날을 길이 빛내자.
이 노래는 1946년에 문교부 장관 안호상이 의뢰해 위당 정인보가 작사하고 당시 숙명여대 음악과 강사였던 작곡가 박태현이 곡을 붙여 만든 삼일절 노래이다.
지난 3월 1일은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을 맞는 올해의 첫 국경일로 96주년을 맞이했다.
삼일절과 관련해 한 여론조사기관에서 전국성인 1005명을 대상으로 3.1운동이 일어난 연도를 묻는 질문에서 답변자 중 32%만이 정확한 연도로 답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연도를 잘못 알고 있는 답변자가 23%로 해당 연도를 알고 있는 답변자보다 4% 높은 기록을 보였다.
정확한 연도를 아는 것이 중요한 사항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광복 70주년, 분단 70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지난 역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우리의 현재 실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일본은 친일내각을 세우고 조선을 식민지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고, 그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식민통치를 받았다. 유구한 역사에서 우리 민족이 가장 크고 아픈 상처를 입은 한국사의 특수한 기간이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쟁하며 활발한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다. 1919년 3월 1일이 바로 자주 독립의 주춧돌이 된 날로, 이 날 우리 민족은 일제의 압박에 항거해 전 세계에 민족의 자주독립을 선언하고 온 민족이 총궐기해 평화적 시위를 전개하며 어떤 수난에도 굴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기개와 의지로 나라를 되찾겠다는 정신을 보여주었다.
수많은 선구자와 수많은 독립열사들의 노력으로 70년 전인 1945년 우리 민족은 광복의 기쁨을 맞았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광복과 함께 찾아온 남북 분단으로부터 어느덧 벌써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남북분단 이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사건 등의 북한 도발로 우리는 수많은 고귀한 생명을 잃었으며 남북분단으로 이별한 이산가족은 지금까지도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북한의 먼 하늘만 쳐다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다.
1919년 3월 1일 온 민족이 한마음, 한뜻으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그 날을 기억하며 우리 민족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되새기고, 항일 투쟁에 맞서던 선열들의 굳은 의지와 정신을 이어받아 한민족 간의 갈등과 증오심을 없애 한 민족, 한 국가로 발돋움하는 새로운 역사를 그려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