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군득 기자 =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현재 한국 경제에 대해 디플레이션이 우려된다는 진단을 내리자 경제 부처가 관련 정책을 재검토하는 등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최 부총리가 취임 초부터 강조한 ‘정책 신뢰도’는 저물가 장기화 등으로 회복이 더디고 구조개혁 역시 시작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높아진 것이다. 지난 4일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수요정책포럼 조찬 강연에서 최 부총리는 정부뿐만 아니라 재계, 금융 등 경제주체들을 겨냥해 거침없이 쓴 소리를 내뱉었다.
이처럼 최 부총리가 공식석상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포함해 강도 높은 구조개혁에 착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경제부처들이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최 부총리 자신이 3~4월을 ‘골든타임’으로 정한 만큼 4대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실무 부처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해 고용노동부, 교육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이 구조개혁 성과를 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이 가운데 노동개혁과 금융개혁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고용부는 당장 이달 중 노사정 위원회가 정상적으로 가동돼야하는 부담이 생겼다. 이달 중 구조개혁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4월 데드라인까지 구조개혁 틀을 잡는데 난항을 겪을 수 있다.
금융업계는 최 부총리 눈치 보는데 급급하다. 금융개혁에 대한 최 부총리 평가가 냉혹해지면서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 4일 금융 시장은 “고장났다”고 표현하며 ‘채찍’을 선택했다.
그는 “경제가 발전하면 금융업권 국내총생산(GDP) 비율이 늘어야 하는데 지금 금융업 취업자는 급감하고 있고 GDP 비중도 5%대에 주저앉았다”며 “과거 목표는 10% 정도로 올리겠다고 했는데 올리기는커녕 뒷걸음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GDP에서 금융 및 보험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년째 5~6%대 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0년 이 비중이 5.8%였고 2003년 7%가 넘었던 점을 감안하면 ‘덫’에 걸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013년 11월 ‘금융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지만 정책추진 첫해인 지난해 GDP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부가가치 비중은 5.4%에 그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 금융·보험업 일자리는 2013년 12월 85만9000개에서 지난해 말 80만7000개로 줄었다. 작년 취업자가 12년 만에 최대를 기록했지만 금융업종 일자리는 역행했다.
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최 부총리가 취임 후 이렇게 시장을 혹평한 사례가 없다. 작정하고 업계에 채찍을 들었다고 보면 된다”며 “그동안 각종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며 업계를 다독거렸는데 시장이 반응하지 않으니 답답할 것이다. 구조개혁 골든타임에 대한 발언도 업계의 긴장감을 유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는 저물가 장기화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최 부총리의 ‘디플레이션 우려’ 발언 이후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기에도 무리가 따른다는 분위기다.
특히 3개월 연속 0%대 소비자물가를 기록하며 저물가 장기화에 접어들 조짐이 보이자 하락세를 막기 위한 묘수 찾기에 골몰하는 모습이다.
기재부가 정책에 변화를 주려는 움직임은 지난달 물가가 담뱃값 인상을 제외하면 ‘실질적 마이너스’였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경제 전망에 긍정적이던 최 부총리까지 우려를 표명한 마당에 기재부의 정책 노선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해외 투자기관들도 우리 정부가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에 더울 유의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저물가 장기화를 우려하는 시선이 높아진 것이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유가하락의 소비자물가 전이속도가 평소보다 빠르고 서비스가격 상승률도 둔화되고 있다”며 “한국정부가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에 더욱 유의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