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의 수요정책포럼 강연에서 “적정 수준의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고는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며 기업의 임금인상을 강조했다. 특히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일본의 아베 총리는 노골적으로 기업에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흐름에 재계가 반대하는 것에 대한 유감의 뜻을 내비쳤다.
이날 최 부총리의 발언은 지난주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가 올해 임금을 동결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재계는 사실상 ‘최후의 통첩’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정부 방침을 따라가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삼성그룹이 총대를 맨 모양새가 됐지만, 사실 재계의 임금동결·고용축소는 예정됐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달 초 자산상위 30대그룹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2015년 투자·경영환경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기업의 절반 이상인 58.6%가 올해 중점 추진 경영전략으로 사업 구조조정 등 경영내실화(58.6%)를 진행할 것으로 분석했다.
대기업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다. 투자 축소 또는 연기, 비수익사업 정리 및 통합, 조직개편을 통한 슬림화, 인력 구조조정을 포함한 희망퇴직, 사업장 생산성 향상 등 정부의 투자 확대와 고용창출 요구에 보조를 맞추면서도 할 수 있는 모든 방향으로 비용을 줄여 나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마른수건 짜기는 올 들어 한계에 달했다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통상임금과 정년연장제 등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대규모 정리해고 등을 피하고, 현 상태의 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임금동결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삼성전자 이슈가 먼저 불거졌지만 현대자동차그룹이나 SK그룹, 포스코 그룹을 비롯한 다른 대기업도 이 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도 임금동결 등을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기업 고위 관계자도 “최 부총리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기업이 시장 경쟁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출할 수 있는 인건비 여력은 한정됐지만, 노조와 직원 등 사회에서 원하는 임금인상 기대치는 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기업은 부자인데 직원은 가난하다’는 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러나 기업의 자금사정도 생각보다 좋지 못하다.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호황기 때처럼 돈을 썼다가는 언제라도 망할 수 있다"며 "어느 한쪽에 희생을 강요하려는 것이 아닌 조직원 모두가 위기를 극복하자는 차원에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목적으로 이해해 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