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주들의 밝은 표정과 달리 이날 박 회장의 표정은 굳은 의지로 가득했다. 단상에 선 박 회장은 “회원의 권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임기는 3년. 3년을 더 연임해 6년간 화랑협회를 이끈 표미선회장의 시대와 달리 변화와 혁신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8년 이후 경기불황으로 미술시장은 관망세가 지속되고 있다. '장사가 안돼 손가락만 빤다'는 화랑들이 늘고 있다. 실제로 정부가 실태 조사결과(2013년) 작품 판매 실적이 없는 곳이 전체의 26.2%(113개)나 됐다. 시장 규모의 약 80%를 차지하는 상위 10개 화랑도 밝지만은 않다. 작품판매 실적은 전년보다 32.4% 감소한 1658억원으로 추정돼 화랑시장은 침체기다. 화랑협회에는 국내 140여개 화랑이 가입되어 있다.
■'절체절명' 화랑들 위상강화 절실
“그림이 마치 비자금이나 검은 거래 수단으로 전락한 것처럼 보이는 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박 회장은 “이제 우리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우선 업계권익 신장을 최우선 과제로 일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서미갤러리의 미술품 탈세 사건 등으로 화랑의 사회적 위상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외부에서는 화랑을 비자금 통로로 보고 있어요. 지금은 무엇보다 화랑의 위상을 높이고 재정립할 때입니다”
'화랑의 위상 강화'를 강조하는 박 회장은 화랑주로서 자부심이 세다. 미술시장을 위해선 누구보다 앞장섰다. 20년 넘게 양도소득세 반대등 시장활성화를 위해 열정을 바쳤다. 법 통과를 막기위해 국회의원을 만나고 설득하고 사정하며 미뤄지기도 했지만 양도소득세 부과는 대세였다. 2013년 1월 6000만원 이상의 작고작가 미술품에 부과된 양도소득세는 미술시장에 또다시 타격을 가했다.
박회장은 "당시 국회의원 보좌관들은 당신은 몇십억짜리 팔면서 몇백만원 세금은 안내려고 하냐"는 드러낸 반감을 봤다"면서 "서미갤러리에 덧대진 이미지로 세금을 안내려는 꼼수, 화랑은 장삿꾼이라는 인식만 강해졌다"고 회상했다.
'양도소득세 반대'를 하며 뭉쳤던 화랑들은 이후 구심점을 잃었다. 불황의 시장속 가난해진 화랑들의 불만도 쌓이는 걸 체감했다.
깨달은 건 '상생과 화합'이다. 박 회장은 "미술품 세제혜택등을 요구하기 보다 우선 협회 회원들 간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밝혔다. 화랑들의 일치단결로 유통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게 박 회장의 의지다
협회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올해 한국국제아트페어를 끝내고 하반기부터 사회에 이바지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것”이라며 “그런 것들을 하지 않으면 장사꾼으로밖에 비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서울과 지역화랑의 격차도 해소할 계획이다. 박회장은 "멘토·멘티제를 제시"하며 “멘토를 설정하고 멘티가 된 화랑들을 도와야 한다. 잘 나간 화랑들이 형 노릇을 좀 해야 미술 시장이 발전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화랑과 경매사 상생 추진할터"
“작가를 발굴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1차 시장인 화랑과 컬렉터를 중심으로 한 2차 시장의 미술품 경매사 역할이 구분돼야 합니다”
2005년이후 경매사가 미술시장의 대세로 돌아서면서 화랑은 설자리를 잃고 있다.화랑에서 그림을 사던 오랜 고객들도 경매사로 떠났다. 작품값이 검증됐다는 이유이기도 하고, '아트테크'바람이 분 탓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화랑들이 노력을 덜해서 뺏긴 것은 맞다"면서도 경매사의 '저인망식 싹쓸이' 영업에 대해 쓴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사실 서울옥션이 처음 생겼을 때 수익이 별로였죠. 그런데 10년 전 K옥션이 생기면서 홍보마케팅 극대화로 미술품이 투자품목으로 편입되면서 경매사가 우세로 돌아섰지요."
박 회장은 "1년에 4회이상 경매를 안하고 5년이상 경과하지 않는 작가는 경매를 하지않겠다고 사인까지 했지만 경매사가 이 협약을 깼다"면서 "이후 경매사들은 메이저 경매는 기본으로 온라인경매,가구경매, 초보컬렉터를 위한 경매등 다달이 쉬지않고 경매를 펼치고 있다"며 설자리를 잃은 화랑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화랑들은 작가들의 개인전을 열어주면서 책임감이 생기게 되지만, 경매시장은 그러지 않지요. 시장으로서만 존재할 뿐이잖습니까."
이는 "화랑이 힘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자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변형된 국내미술시장에 대해서도 안타까워했다. 박 회장은 “작가는 1차 시장에서 개인전이나 기획전 등을 통해 성장해야 한다"며 "아트페어나 경매 등에서 일반인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데 중간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경매 시장에 작품을 내놓다 보니 문제가 된다"고 1차시장이 붕괴된 유통구조를 지적했다.
박 회장은 “경매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지만 1차, 2차 시장의 충돌을 방지하면서 서로 윈윈해야 미술계가 살아날 수 있다”며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아볼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화랑협회 최대 수익 KIAF 내실화 국제화 추진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한국화랑협회의 최대 수익사업이다. 2002년 출발, 2005년 11개국이 참여한 국제아트페어로 모양을 갖췄다. 초기 정부에서 1억~3억원까지 지원할정도 매출실적이 저조했지만 2005년 이후 미술시장 호황으로 급성장했다. 2007년부터 매년 꾸준한 성장세로 미술시장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지난해는 불황에도 230억원의 매출을 기록, 미술시장이 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왔다.
하지만 박회장은 '작년에 적자가 났다"고 고백했다. 실질적으로 3억원정도를 벌어야 수지가 맞는다고 했다. 불황이 화랑을 삼켰다. KIAF가 전적으로 지원하는 화랑미술제는 더 심각하다. 부스비를 못낸 화랑이 부지기수. 부스 하나에 650만원 내야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 때문에 박회장의 어깨는 더 무겁다. "올해 또 적자가 나면 협회 잔고가 바닥납니다. 긴축재정을 하겠지만 마케팅을 극대화해 매출을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KIAF는 아시아미술시장에서 최초로 생긴 아트페어로 화랑협회가 끝까지 이끌고갈 역점사업입니다."
문화융성시대, “정부 정책에서 미술은 뒷순위”라며 정부의 관심도 부탁했다. “정부가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소통창구를 화랑협회에 일원화했으면 합니다. 또 하나는 '문화의 힘'을 알리고 자부심으로 일하는 미술인들에게 문화훈장을 수여해 힘을 실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화랑주에서 화랑협회장이 된 박우홍회장은 국내 화랑 2세경영의 선두 주자인 박주환 동산방화랑 창업주의 장남이다. 박주환 회장은 전통화 표구사를 운영하다 1974년 인사동 동산방화랑을 설립했다. 박 회장의 표구사는 꼼꼼한 실력으로 천경자 박생광등 국내 대표 한국화가들이 믿고 맡길 정도였다. 동산방화랑은 한국화가들의 산실이자 고서화 전문화랑으로 명성이 높다. 박주환 회장은 화랑협회 2대와 6대회장을 역임했고 전통미술 보존의 공로로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건국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박우홍회장은 2000년 가업을 이어 동산방화랑 대표가 됐다. 깐깐한 아버지 밑에서 혹독한 경영 수업을 받은 박 회장은 화랑가에서 겸손하고 깔끔한 신사라는 평이다.
동산방화랑은 이제 3세대 경영을 앞두고 있다. "화랑을 하겠다"는 아들을 결혼 다음날 미국 뉴욕으로 유학으로 보냈다. 미술전공자 이지만 많이 보고 오라며 아무 조건도 붙이지 않았다. 박우홍 회장은 "미술품은 절대 감동이 있다"며 "(갤러리스트)이 직업이 애환은 있지만 문화적인 소양을 가지고 관심도를 가지고 있으면 해볼만한 직업"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