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사회에 이런저런 갑질 사건이 일어났잖아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순식간에 발화하는 화약 같죠. 그 분노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은가는, 사람들 마음속에 다 있을 겁니다. 살면서 겪었던 어떤 불의한 경험들, 그 억울한 경험들이 각각의 가슴에서 질러지니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죠. 드라마는 당대를 다루고 표현해야 하고, 또 그걸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은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점에 그런 것들 다뤄보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게 아닌가요?” 안판석 PD는 되물었다.
“정성주 작가 작업실에서 작품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눠요. 한번 시작하면 12시간 씩 대화를 하곤 하죠. 어느날 정 작가가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노래가 계속 떠오른다고 하더라고요. 나도 좋아하는 노래라 제목으로 정했는데, 정하고 보니 우리 작품에 딱이에요. 제목이라는 것이 한번 지어놓으면 자꾸 부르게 되는데 ‘풍문으로 들었소’는 되내일수록 초심을, 작품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는지를 각성시켜주더라고요. 귀로 들어 알고는 있지만 사실인지 가짜인지 모를 권력층의 풍문을 다루니까요. 신나는 멜로디에 슬픈 가사의 생경함이 우리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아이러니함과도 어울리고요”
정성주 작가와 벌써 세 번째 작품이다. “정 작가는 드라마에 몇 안남은 문학의 딸”이라고 극찬을 하며 오랜 인연을 꺼내놨다. “1979년 1월 1일자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 정말 좋았다. 당선 소감 역시 지금도 생생히 기억날 만큼 인상 깊었는데 얼굴까지 예쁘더라. 그게 정성주 작가였다. 그렇게 나 혼자 인연을 만들었다”는 그는 “단막극 조연출 시절 이메일이 없을 때라 대본을 직접 받으러 갔는데 정성주 작가가 딱 있더라. 그때 처음 만났다. 연출을 시작하면서 작가 이름도 안 써있는 대본을 받고 감탄해 꼭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그게 정성주 작가의 ‘장미와 콩나물’ 이었으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인연이냐”며 웃었다.
안판석 PD의 정성도 정 작가 못지 않아보였다. 겹치기 출연을 피하고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탄탄한 연기력을 자랑하는 연극 배우를 조연으로 대거 채용했다. ‘풍문으로 들었소’ 한정환 EP는 “대본 리딩 현장을 갔는데 배우 34명 중에서 주연 6명 빼고는 다 처음 보는 배우였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로에서 연극하는 사람들 중에 연기 잘하는 배우가 참 많아요. 연기 예술에 투신하는 사람들이죠. 무대에서 평생 갈고 다듬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연기를 TV에서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조연급 연기자래 봤자 몇 안돼는데 여기저기 겹치기 출연하는 배우를 기용하는 것도 시청자에게 좋지 않죠. 드라마라는 것이 ‘이거 진짜야’ 하면서 시청자를 속이는 건데 비싼 돈들여서 캐스팅한 주연 배우가 쌓아온 리얼리티를 어설픈 단역이 한순간에 헤쳐버릴수 있거든요. 그래서 가장 마음 졸이며 캐스팅 하는 것이 조연과 단역이에요.”
“잘하는 것도 어렵고, 사랑을 받을지 못 받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봐야 하지 않겠냐.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하고 싶다”는 그의 말에서 작은 것도 허투루 넘기는 법이 없는 ‘안판석표 리얼리즘’의 원천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