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도시를 읽다(36)] "돈과 사람 몰려드는 티베트" 변화하는 라싸

2015-02-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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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시짱자치구 라싸시 포탈라궁 앞에 버스가 주차돼 있다. [그래픽=아주경제 임이슬 기자]

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최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첫 공개 대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일 워싱턴DC 한 호텔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달라이 라마와 인사하고 "좋은 벗”이라 평가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달라이 라마와 인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동안 세 차례 달라이 라마와 회동했지만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모두 비공개로 만났다.  

중국은 즉각 내정간섭이라 반발했다. 중국에게 티베트 지역은 ‘핵심이익’이다. 덩샤오핑이 생전에 “중국의 절반을 내줄지언정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다. 중국 공산당에게 달라이 라마는 핵심이익을 위협하는 "양의 탈을 쓴 늑대", “분열 분자”인 것이다.

티베트의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중심지는 라싸(拉薩)다. 라싸는 티베트어로 ‘신의 도시’라는 뜻이다. 옛 명칭은 ‘산양의 땅’이란 뜻으로 '러싸(惹薩)'라 불렸다. 조캉사원을 지을 때 산양떼가 인근 산에서 흙을 실어 날랐다는 설화에서 나왔다.

라싸는 1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티베트의 고도(古都)다. 7세기 초 티베트 지역을 처음으로 통일한 송첸캄포는 토번(吐蕃)제국을 세웠다. 해발 3700m 라싸를 도읍으로 정하고 포탈라궁을 지었다. 토번은 강했다. 당시 토번의 위세에 밀린 당나라가 당 태종의 딸 문성공주를 송첸캄포 부인으로 바쳤을 정도였다.

티베트 지역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 것은 토번국이 내분으로 무너지면서부터다. 13~14세기에는 원 나라의 지배를 받았으며, 이후 청 나라 건륭제에 정복당했다. 청 나라는 티베트를 ‘서쪽의 보물창고’라는 뜻으로 시짱(西藏)이라 불렀다.

1912년 청 나라 멸망 후 중국이 혼란한 틈을 타 티베트는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결국 1950년 마오쩌둥이 보낸 인민해방군에 의해 점령당했다.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와 강제로 평화협정을 맺으며 티베트를 합병했다. 중국은 이를 두고 ‘평화해방’이라 불렀다. 봉건주의 농노 상태의 티베트인들을 평화적으로 해방시켰다는 뜻이다. 하지만 서방에서는 ‘강제 합병’이라 비난했다.

중국의 티베트 ‘평화해방’ 이후 14세기부터 이어져온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한 종교와 정치는 하나라는 정교합일(政敎合一) 지배체제는 부정됐다. 주요 사원은 파괴되고 승려들은 핍박당했다. 이 때 라싸에서 일어난 일들을 영화로 각색한 것이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이다. 영화 개봉 후 브래드 피트는 중국 정부로부터 입국 금지 조치를 당했다.

이후 1959년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요구하며 봉기하다 무력 진압됐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했다. 정신적 지도자를 잃은 티베트 지역엔 1965년 시짱(西藏)자치구가 세워졌다. 중국 소수민족 자치구 중 가장 늦게 설립됐다. 중국은 티베트를 시짱, 티베트인을 짱족(族藏)이라 불렀다. 티베트 지역의 1인자는 이제 달라이라마가 아닌 시짱자치구 당서기다. 한때 시짱자치구 당서기였던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은 티베트 독립시위를 무력 진압하기도 했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짱자치구는 중국 속의 또 다른 국가나 다름없었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철도가 연결되지 않은 곳이었다. 외국인의 방문도 엄격하게 제한됐다. 경제적 이익이나 물질적 풍요보다는 종교적 가치나 정신적 만족을 추구하는 티베트인의 가치관도 이어져왔다. 우리나라 고은 시인도 “당신께서 가장 높으십니다”라는 티베트 거지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어 ‘라싸에서’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티베트 지역에 대한 통치방침을 억압책에서 유화책으로 바꾸면서 티베트도 바뀌어갔다. 중국은 시짱자치구에 경제개발이라는 당근책을 부여했다. 당근책의 ‘최대 수혜자’는 라싸였다.

2001년 국무원은 라싸에 티베트 지역의 유일한 국가급 경제기술개발구 설립을 허가했다. 2006년엔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爾木)에서 라싸를 잇는 칭짱철도가 개통됐다.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거리는 48시간으로 단축됐다. 지난해 개통된 라싸와 티베트 제2도시 르카쩌(日喀則)를 연결하는 철도는 2020년까지 인도 네팔 국경도시까지 철도를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쓰촨(四川)성과 라싸를 잇는 철도도 최근 착공에 들어갔다. 

잇단 열차 개통으로 한족들이 대거 티베트로 이주했다. 열차는 사람뿐 아니라 돈과 사상을 라싸로 실어 날랐다. 라싸는 빠르게 중국에 동화돼갔다. 한족들이 거주하는 신시가지에는 현대식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들어서고 한족들은 상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경제개발에서 소외된 티베트인들은 구시가지로 밀려나고 있다. 한족들에 의해 티베트 고유의 언어, 문화, 전통도 소멸되고 있다. 중국의 티베트 '껴안기'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티베트 지배에 항의한 승려들의 분신자살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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