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 기자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이 사느냐, 죽느냐가 결정된다. 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사람은 박지원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출범에 기여한 나에게는 승리의 DNA가 흐르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선출을 위한 2·8 전국대의원대회(전대)에 나선 박지원 후보의 태도는 결연했다. 얼굴에는 비장미마저 감돌았다.
유머도 잊지 않았다. ‘강한 결기’를 보여주면서도 ‘유연한 리더십’으로 여의도 마당발로 통하는 박 후보는 인터뷰 당시 동석한 캠프 대변인 김유정 전 의원에게 “(기자들한테) 커피 등 차를 주지 마세요. (전대) 투표권도 없잖아요”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후보의 촉박한 일정 탓에 곧바로 인터뷰가 진행됐다. 이내 그의 얼굴은 단호해졌다. 최대 경쟁자인 친노(親盧·친노무현)그룹 좌장인 문재인 후보를 향해 “좋은 대선 후보이지만, 최상의 대권 후보는 아니다”라며 “우리 당에는 충남의 안희정 (충남지사), 대구의 김부겸 (전 의원), 부산의 안철수 (전 공동대표), 호남의 정세균 (의원) 등이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나는 계파가 없다”, “사심이 없다”, “목표는 오직 정권교체” 등의 말을 자신 있게 힘주어 말했다. 당내 비노(非盧·비노무현)그룹과 호남 등 구민주계 지지를 받고 있지만, ‘박지원계’라는 특정 계파가 없는 만큼 공천권을 쥔 채 ‘줄 세우기’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초반부터 전투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진행된 박 후보와의 인터뷰 제1막이 시작됐다..
◆전대 출마 목표는 첫째도 둘째도 ‘정권교체’
박 후보는 과도기 지도부인 ‘문희상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체제의 막을 내리는 이번 전대가 지닌 의미에 대해 “지금도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계속되고 있다. 앞서 이명박 5년간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실정이 있지 않았느냐”며 “이제 더는 안 된다. 오직 정권교체를 위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근혜 정부 집권 초부터 발발한 인사 파동, 2년차 때 세월호 참사와 청와대 비선실세 의혹인 이른바 ‘정윤회 국정개입 문건’ 의혹 등 구체제와 단절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민주주의·서민경제·남북관계’ 등 3대 위기론을 주창한 바 있다.
박 후보는 “7년의 보수정권 실정을 끊어내는 방법은 ‘정권교체’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당 대표 경선에 나섰지만, 다른 사심이 없다. 오직 ‘정권교체’ 하나”라며 “다른 후보는 대표 이후 대통령이 되려고 하지 않느냐. 그러면 혁신할 수 없다. (사심 없는) 박지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박 후보는 “지금의 당 상황은 어떤가. 존재감이 없다”며 “당을 살려야 한다. 지금 대의원 및 당원들은 ‘박지원’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이 박근혜 정부의 온갖 실정에도 불구하고 ‘강한 야성(野性)’을 보이지 못하면서 20%대 지지율에 처했다는 진단인 셈이다.
실제 새정치연합의 전신인 구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손학규·정세균’ 대표 체제를 시작으로, 친노인 ‘한명숙·이해찬’ 대표 체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를 거치면서 ‘리더십 부재’ 현상을 드러냈다.
박 후보는 당의 ‘약한 리더십’과 관련, “무엇보다도 우리가 야당답지 못했다. 강한 야당을 못한 것”이라며 “강한 야당은 싸울 때는 ‘치열하게’ 싸우고 협상을 할 때는 ‘감동적인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우리는 치열하지 못했다. 야당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줄 것은 (정부여당에) 주고, 받을 것은 받아내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며 “장외투쟁과 대통령 발목을 잡는 게 강한 야당은 모습은 아니다. 협상해서 져주는 것도 강한 야당”이라고 당내 강경파를 꼬집었다.
◆계파보스 문재인, ‘패한’ 선거만 했다…힐러리 길 가라
박 후보는 이 대목에서 문 후보가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한 발언을 거론하며 “패한 선거만 한 분이 어떻게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느냐”라며 “문 후보는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면서도) 당권에 도전하지 않은 ‘힐러리 클린턴’의 길을 가라. 당 대표 길은 내가 가겠다”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또한 문 후보의 ‘측근 배제’ 공약에 대해 “(친노그룹의) 계파보스가 아니냐. 계파보스가 계파청산을 말하고 있다”며 “그 정신을 가지고 (18대 대선에서) ‘친노 2선 후퇴’를 했다면,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앞서 문 후보는 18대 대선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나오면서 ‘친노 패권주의’ 논란에 휘말렸다. 앞서 19대 총선 공천 때부터 시작된 친노 패권주의는 범친노그룹의 공천 장악과 이해찬 체제 출범 등을 거치면서 고착됐다. ‘구체제냐, 분열 프레임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박 후보는 “계파 청산 및 정당 혁신은 박지원만이 할 수 있다”며 “계파가 없는 박지원만이 그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정당 혁신을 꾀할 수 있다”고 재차 역설했다.
이 대목에서 “박지원 체제가 출범할 경우 친노그룹이나 호남 등 특정 계파나 지역이 물갈이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박 후보는 “호남이라고 해서, 친노라고 해서 (일괄적으로) 물갈이를 해서도 배제해서도 안 된다. 또한 우대도 차별도 안 된다”며 “(현역 의원) 130명 모두가 (혁신의) 대상이다. 과감한 공천을 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
공천혁명 방법과 관련해 “공천심사위원회를 폐지하고, 당원추천형 완전국민경선을 실시하면 된다”며 “자격심사위에서 정치신인 등에 대해 기준선 통과 여부만 결정하고, 당원이 추천하고 완전국민경선을 하면 당원과 국민이 모두 참여하는 혁신 공천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경선은 ‘박지원’만 한다…‘文·李’ 따라오기 바쁘다
박 후보는 “지금 정책 경선을 하는 사람이 누구냐. 박지원밖에 없지 않으냐. 다른 후보들은 나를 따라만 오고 있다”며 “어떤 후보는 당 혁신안도 내놓지 못했다. 지금 누가 구체적이면서도 현실 가능한 공약을 내놨나. 물론 따라오는 것도 좋지만, 정책 선거가 이번 전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천명했다.
박 후보는 공천심사위 폐지와 당원추천형 완전국민경선 이외에도 △비례대표 석패율제 또는 6개 전략지역 비례대표할당제 △지방의원 국회비례대표 추천제 △지방선거 공천권 시·도당에 대폭 이양 및 청년의무공천제 △비례대표 예비후보등록제 도입 등의 5대 공천혁명 공약을 발표했다. 대구참여연대는 지난 6일 박 후보의 6개 전략지역 비례대표할당제 등에 대해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 후보는 “당 대표가 되면 공약을 반드시 이행하겠다. 국민과 당원의 신뢰 위해서 실천 가능한 공약을 내놨다”고 말한 뒤 “(지방의원 국회비례대표 추천제) 등은 여야가 합의해줘야 한다”고 여야 간 통합의 정치를 복원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거듭 “사실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에게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제까지 풀뿌리 민주주의를 외면한 채 몇몇 국회의원 중심의 정치를 할 것이냐”라고 반문한 뒤 “집권을 위해서는 이분들의 협력이나 당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은 없느냐’라고 물었더니 박 후보는 “(공약을) 못 지키면 ‘땅콩 부사장이 된다”며 “현실 가능한 공약, 당 대표 이후 여야 합의를 통해 공약을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은 박지원”이라고 재차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한 5대 정당혁신 공약으로 △시·도당에 국고보조금과 당비 대폭 지원, 당원교육·지역활동 강화 △민주정책연구원 시·도 지부 설치로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공약 개발 △당 대표 직속 생활정치위원회 설치 및 농어촌특위 상설기구화 △‘민주정치 아카데미’ 당원교육 상설화 △당원증·배지 교부 및 당보 재발행 등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대표 직속으로 이분들을 생활정치특위 등에 참여시키는 등 활성화를 꾀한다면, 국민밀착형 생활정치 시대 개막은 물론 전략지역 당 지지율 10% 제고로 16년 총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고 단호히 말했다.
◆꼼수정치하면 ‘땅콩 부사장’ 된다…단일화 없다
당원 밀착형 공약 때문일까. 박 후보는 ‘대의원·권리당원’ 등 당심(黨心)의 지지가 높은 것과 관련, “이번 전대는 대권 후보를 뽑는 선거가 아니다. 대의원과 권리당원 등이 새정치를 위기에서 구할 사람은 박지원이라고 결정한 것”이라면서도 “국민들은 대통령 후보 적합도를 생각한다. 당원 지지도는 제가 제일 높다”고 밝혔다.
박 후보는 ‘박풍(朴風·박지원 바람)’이 일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당원 지지율이 높다고 해서) 박풍이 부는 것은 아니다”라며 “선거는 마지막까지 성실하게 노력하고 겸손하게 임하는 사람이 유리하다”고 덧붙였다.
당 안팎에선 새정치연합 2·8 전대가 △대의원 45% △당원 30% △일반당원 및 일반국민 25%의 룰로 실시하는 만큼 박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박 후보는 이와 관련, “(김한길호가 출범한) 지난해 5·4 전대 규정을 기본 토대로, 우리가 5% 양보해서 정해진 룰”이라며 “당내 비대위원을 하면서도 우리 측 사람들에게도 ‘룰 가지고 시비를 걸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당은 이미 나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문재인 대세론을 꺾을 수 있느냐’라고. 박 후보는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은) 겸손하지 못한 발언”이라며 “뚜껑을 열어봐야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 대표가 되면, 중도개혁 노선을 통해 중도층으로부터 사랑받는 정당으로 만들 것”이라며 “대북정책은 상당히 진보적이지만, 새정치연합의 정체성은 창당 때부터 지금까지 ‘중도개혁’이다. 우리 당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정당이 아니냐”라고 주장했다.
박 후보는 헌법재판소의 해산 결정을 받은 통합진보당을 거론하며 “선을 그어야지, 함께 가느냐”라고 잘라 말한 뒤 문 후보를 겨냥, “대통령 후보는 (야권연대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의 압력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진보당의) 200만 표가 눈에 아른거린다”고 꼬집었다.
마지막으로 2·8 전대 변수로 떠오른 이인영 후보와의 단일화와 관련해선 “이 후보는 우리 당의 미래이자 희망이지만, 조금 경력을 다듬었으면 좋겠다”며 “과거처럼 (합종연횡 등) 꼼수정치를 하면 ‘땅콩 부사장’ 된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완주 의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