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을 늦춰 점유율 확대를 노렸지만 오히려 재고 처리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던힐, 켄트 등을 판매하는 BAT코리아는 지난 5일 내부 회의를 거쳐 전국 지사에 출고제한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BAT코리아는 이메일을 통해 켄트 6mm, 던힐 파인컷 1mm, 보그 프리마, 던힐 프로스트, 던힐라이트, 던힐 1mm, 던힐 밸런스 등 주요 제품에 대한 출고를 금지했다. 동네 슈퍼마켓 등 '일반 소매점'에 대한 출고 물량을 원천 봉쇄한 것이다.
◆ 열흘 넘은 던힐 품귀 현상
정부 입장과 달리 BAT코리아는 보름 가까이 가격 인상을 미뤄왔다. 글로벌 본사와 협의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KT&G와 외국계인 필립모리스는 이달 1일부터 가격을 인상, BAT코리아의 변명을 무색케 했다.
당시 담배업계는 BAT코리아가 2000원 싼 가격을 고수하면서 구매를 유도, 10%까지 떨어진 점유율을 올리려는 '꼼수'라고 비난했다. 결국 판매가격 변경신고를 지난 7일에야 마친 BAT코리아는 13일 주요 제품을 4500원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열흘 넘게 2000원이나 싼 가격으로 던힐을 판매한 BAT코리아의 전략은 적중했다. 고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는 '던힐 품귀현상'이 벌어졌고, 일부 고객들은 편의점주가 "담배를 사재기하고 일부러 안판다"며 싸움을 벌이는 등 사건사고까지 즐비했다.
문제는 편의점과 달리 동네슈퍼에서 터졌다. 오히려 담배가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 뒤늦게 물량 조절에 나선 BAT
편의점에서는 담배가 모자라고, 동네 슈퍼에는 남아 돌자 편의점업계는 BAT코리아를 맹렬히 비난했다.
실제로 전국편의점사업자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BAT가 1월 2일부터 담배 발주를 5분의 1로 줄이고 더 이상 발주 자체가 안 되도록 막았다"며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편의점주들에게 판매활동에 도움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우롱하고 있다"고 항의했다.
상황이 이렇자 BAT코리아는 부랴부랴 물량 조절에 나섰다.
결국 지난 5일 내부 회의를 거쳐 전국 지사에 출고제한 지시를 내렸다. 동네 슈퍼 등으로 출고되는 물량을 원천봉쇄하고 편의점 출고량을 늘리기 위함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영업사원들이 동네 슈퍼에 풀린 물량은 보루당 5000원씩 웃돈을 주고 회수, 편의점주들의 원성을 더 크게 샀다.
결국 BAT코리아는 지난 5일 주요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내부 회의를 거쳐 전국 지사에 출고제한 지시를 내려 물량을 조절하며 진화에 나섰다.
◆ 물량 조절에 나선 진짜 이유는?
이처럼 BAT코리아가 출고 제한은 물론 보루당 5000원이라는 웃돈을 주고 구매, 편의점에 공급한 진짜 이유는 재고 소진과 업무 성과 때문으로 풀이된다.
BAT코리아는 주력제품인 던힐 4종을 전면 리뉴얼한다고 최근 밝혔다. 이 제품들은 가격이 인상되는 13일부터 4500원에 판매되기 시작했다. 던힐 6mg, 던힐 3mg, 던힐 1mg, 던힐 프로스트 1mg 등이다. 리뉴얼 이전 제품은 소진 시까지 2700원에 판매한다.
BAT코리아 입장에서는 신제품이 출시된 이후에도 시중에 2700원 짜리 기존 제품이 계속 남아있으면 마케팅 정책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또 국내 점유율이 10%까지 내려간 상황에서 영국 본사에 성과 보고를 위해 편의점 판매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담배업계의 시각이다.
가격 인상까지 늦춰가며 판매량 확대를 노린 BAT코리아로서는 판매량 집계가 즉시 나타나는 편의점의 데이터가 본사에 성과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이기 때문이다. 보여주기식 경영을 펼친 셈이다.
이밖에도 젊은 고객층을 주 타깃으로 하는 BAT코리아로서는 일반 소매점보다는 젊은 고객의 유입률이 높은 편의점에 물량을 확보할 수 밖에 없었고, 편의점주와의 향후 원만한 관계 유지를 위해 물량 조절은 어쩔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이같은 BAT코리아의 행태에 담배업계와 소비자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가격 인상을 늦추는 꼼수를 부려, 품귀현상을 만들고 그 피해는 편의점주와 소비자들에게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BAT는 꼼수를 부리다 재고 소진에 진땀을 빼고, 편의점주들의 공분을 사면서 사실상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간 격이다"며 "특히 담배 품귀 현상이 벌어지면서 편의점주는 물론 소비자들까지 우롱했기 때문에 비난을 면칠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