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문태식 아주그룹 명예회장[사진=아주그룹]
아주경제 윤태구 기자 =향년 86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 아주그룹 창업주인 문태식 명예회장은 '개척자 정신'으로 시대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특히 문 명예회장은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기업인이었다. 항상 미래지향적인 사고로 새로운 분야를 앞서 개척했다. 그는 청년기에 이미 농기구 자루 사업으로 사업가적 자질을 키웠다. 이런 그의 사업가적 안목은 1950년대 시멘트 무역업으로 이어졌고, 1960년대 정부의 농어촌 전기보급 사업과 맞물려 나무 전주를 콘크리트 전신주로 대체하는 사업을 통해, 현재 아주그룹의 모태가 되는 ‘아주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아주그룹의 모기업인 아주산업이 탄생할 수 있었던 요인을 꼽는다면 문 명예회장의 투철한 기업가정신과 국가관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사회 기반 인프라가 부족했던 1950년대 말에는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깃줄을 맬 수 있는 50년 이상 키운 10m 길이의 전주가 필요했다. 그러나 온 산야가 벌거숭이였던 당시 그런 큰 나무를 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고 결국 일본이나 캐나다에서 비싼 돈을 주고 수입해 사용해야만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명예회장은 ‘전신주를 콘크리트로 만들면 5분이면 가능한 일인데 왜 비싼 외화를 주고 몇 달 몇 년씩 걸려 굳이 나무 전주를 수입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러한 결심을 가능하게 했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이든지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해야겠다’는 문 명예회장의 강한 시대정신이다.
이러한 문 명예회장의 시대정신은 현재 아주그룹의 창업이념인 ‘개척자정신’(開拓者精神)에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으며,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지난 50여년간 지속적인 성장을 이룩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며 지역사회와 공존하는 시민기업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 명예회장은 1965년 새로운 사업 구상 차, 기업인 1세대로 평가 받는 유수 기업의 경영자들과 함께 유럽산업을 시찰하는 산업연수단원으로 활약, 해외 콘크리트 제조기술을 국내에 알리며 결실을 맺기도 했다. 1965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콘크리트 전주, 파일, 흄관 부문에서 품질인증마크를 취득했으며, 1974년에는 콘크리트 전주와 콘크리트 파일의 KS인증마크 허가를 취득했다.
또 이러한 각종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1961년 아주산업 최초의 전주 공장인 망우공장, 1964년 흄관공장에 이은, 1975년 오산공장 준공을 신호탄으로 신규사업 확장에 성공하며 문 명예회장의 리더십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됐다. 1972년 연세대 경영대학원(경영연구회 14기) 수료, 1981년 한국원심력공업협동조합 이사장, 1983년에는 동국대학교 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