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많은 강을 건너고 / 많은 산을 넘었다 / 새벽은 이미 왔는가 / 아직 오지 않았는가 //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 새벽 쓰린 가슴 위로 / 차거운 소주를 부으며 / 온몸으로 부르던 새벽 / 그때 우리는 스무 살이었다 // 나는 처음 노래했지만 / 노래한 것은 내가 아니었다 / 누구의 가슴에나 이미 있었고 / 누구라도 받아쓰지 않으면 안 될 / 우리들 가난한 사랑의 절규였다 //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박노해, 『노동의 새벽』 개정판 서시)
1984년, 27살 청년이 쓴 시집 한 권이 세상을 뒤흔들었다.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가 혁명가로 뒤바뀐 운명의 탄생순간이기도 했다. 이 시집을 세상에 발표하고 곧바로 위험 인물로 떠올라,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채로 각종 시국 사건의 배후 인물로 추적당했다. 그는 '불순한' 노동자, '불온한' 시인, '위험한' 혁명가라는 타이틀이 붙었다.
군사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새벽』은 출간 이듬 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박노해는 등장하자마자 평론가 김윤식, 임헌영 등이 뽑은 ‘1984년의 시인’ 중 한 사람이 되었다. 1988년에는 계간 『문예중앙』과 평론가들이 선정한 ‘지난 10년간 최고의 작품 한 편’으로 『노동의 새벽』이 뽑히기도 했다. 1991년 그가 구속될 때까지 공식 기록은 없지만 이 시집은 100만 부 가까이가 발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동의 새벽'이 나온지 30년이 지난 지금 “일당 4000원짜리” 노동자는 ‘5,210원짜리 노동자’로 바뀌었을 뿐, ‘기계’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희소해지고, ‘인간’은 저렴해지고 있다.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 스무 살 아프던 가슴이 /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 1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