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장기영 기자 = 정부가 본격적인 월세시대 개막을 앞두고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를 추진 중인 가운데 김흥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이 미국형 임대주택을 롤모델로 꼽았다.
민간임대주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관련 사업자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하고, 월세제도를 조속히 정착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월세 정착돼야 민간임대 활성화"
김 원장은 “한동안 전세대책을 얘기했던 정부가 최근 입장을 바꿔 저소득층과 무관한 고액전세에 대응하지 않기로 하고 월세대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세제도를 시행 중인 한국에서도 더 이상 전세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오고 있는 만큼 월세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 활성화를 추진 중인 정부가 주택정책의 초점을 전세에서 월세로 바꾼데 대한 설명이다.
현재 정부는 민간임대주택사업 참여 기업을 물색 중이며, 대형 건설사들은 사업성 검토에 한창이다.
김 원장은 “과거에는 아파트를 사면 무조건 가격이 뛸 거라는 인식이 있어서 집값의 절반 가격에 전세를 주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자본이득을 나눠 가졌지만, 집값이 오르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본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거래가 성립되지 않아 월세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월세제도를 서둘러 정착시켜야만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사업이 사업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원장은 “전세나 보증부월세 시장 하에서의 임대주택사업은 수익을 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월세 전환에 따른 소득공제 혜택을 확대해 월세전환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월세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임대주택사업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토지임대부 임대주택건설사업을 육성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토지를 장기간 빌려주는 임대인에게 상속‧증여세 감면과 같은 다양한 세제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미국과 유럽 임대주택의 체질적 차이점을 들어 미국형 임대주택을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는 “미국은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민간에 의존하는 바가 크고, 유럽은 200년 이상 천천히 경제 발전을 해왔기 때문에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이 굉장히 높다”며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 압축성장한 국가이기 때문에 민간과 시장을 중시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형 민간임대주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건설사, 임대관리회사, 투자가 등 사업 참여자의 역할 분담이 필수적이다.
김 원장은 “건설사들의 역할을 사실상 초기 공급자로 현행 제도 하에서 임대주택을 짓고 장기 운영까지 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수익률도 낮고 종합부동산세나 취‧등록세 등 세금 부담은 물론 보증금이 부채에 포함돼 경영상 어려움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건설사들은 5년 미만으로 일정 기간 임대 후 분양전환을 목적으로 사업에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역할 분담이 필수적”이라며 “기업들이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할 수 있는 공급 기반 조성과 함께 임대주택을 장기 운영할 수 있는 기업형 임대관리회사와 리츠펀드, 연기금 등 임대사업자에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투자할 수 있는 투자가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부동산3법 국회 통과 효과 반짝"
지난해 부동산시장에 대해서는 정부가 발표한 다양한 대책이 한꺼번에 힘을 발휘하지 못해 반짝 효과를 내는데 그쳤다고 평가했다.
정부의 대책 발표와 후속 입법 절차 시기 등이 엇갈려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 원장은 “시장이 죽어가고 있으니까 강력한 심장박동기로 큰 충격을 줬어야 살아나는데 결과적으로 찔끔찔끔 형태의 대책이 됐다”며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세제혜택을 확대했지만 시장이 반짝 살아났다 다시 죽어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산 3법의 국회 통과 필요성에는 공감했지만, 올해 부동산시장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입장이다.
부동산 3법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분양가상한제 폐지 △재건축 조합원 1인1가구제 폐지다.
김 원장은 “조그만 충격이라도 거래시장의 정상화 추이를 한 번 올려주고 가려면 필요하다”면서도 “법안이 모두 통과됐지만 올해 부동산시장을 낙관하기는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라 할지라도 장기지표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은 한 상승세는 짧고 제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소형 건설사 해외 진출 위험"
유가 하락과 수주물량 감소로 해외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국내 건설사에 대해서는 과거와 달라진 역할에 걸맞은 경쟁력을 주문했다.
김 원장은 “해외시장에서 국내 건설사의 역할이 단순 시공 도급에서 사업 전체의 기획, 설계, 구매, 시공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 및 조정하는 쪽으로 확대된 만큼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경쟁력을 필요로 한다”며 “유능한 인재와 이를 뒷받침하는 프로젝트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경쟁업체 보다 높은 수준의 엔지니어링 및 관련 기술 혁신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형 건설사의 해외시장 진출을 장려하고 있는데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국내 건설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만큼 리스크 관리 능력을 갖춘 대형 건설사는 해외로 눈을 돌리고, 중소형 건설사는 국내에서 다양한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김 원장의 견해다.
그는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에서 수조원의 적자를 내도 이를 감내할 수 있는 시스템과 체력이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들은 한 번에 회사 전체가 휘청거릴 수 있어 위험하다”며 “과거와 달리 해외건설의 부가가치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전체 건설사에 해외 진출을 권장하기 보다는 해외시장은 대형 건설사의 영역으로 남겨 놓고 중소형 건설사는 국내에서 자기 역할을 찾아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소형 건설사의 경우 호텔을 많이 짓다가 호텔경영이나 호텔매지니먼트 쪽으로 영역을 넓힌 사례도 있다”며 “건설 유관 업종은 물론 아예 관계가 없는 업종까지 눈을 돌려 구조조정을 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