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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예술단이 난타 공연을 하고있다. [사진=모석봉 기자]
아주경제 모석봉 기자 = 김덕예 하나로예술단장은 “제가 월급을 타면 남편에게 절반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마을금고에 매월 넣어서 1년에 500~600명을 제 사비로 소외계층을 위해 공연을 시작한 것이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는 먼저 마음부터 기본 봉사 자세가 돼야지 겉으로 베푸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봉사정신의 마음자세를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다음은 김덕예 하나로예술단장과의 일문일답.
◆ 소외계층을 위해 예술 공연 등 봉사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올해로 몇 년째 하고 있는지요?
올해로 32년째 하고 있습니다. 제가 70년도 후반에 탁아소를 놀러가고 아기들을 보러간 게 계기가 돼서 80년대 후반까지 보모를 했습니다. 80년대 후반에 제가 결혼해서 대전 서구청 환경과에 취직이 됐습니다.
직업이 공중화장실 청소부였습니다. 공중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저도 제 부모님께 한 번도 생일잔치 선물을 하지 못해서 마음에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독거 노인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제가 월급을 타면 남편에게 절반을 달라고 했다. 나머지는 당신 마음대로 쓰라고 하고 그것을 마을금고에 매월 넣어서 1년에 500~600명을 제 사비로 소외계층을 위해 공연을 하기 시작한 게 벌써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올해만 제가 못했습니다. 올해 제가 눈도 아팠고 수술 준비도 있었고 그래서 올해만 못했습니다. 지금은 내년에 할 봉사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로예술단은 정식으로 설립 된지 2년이 아직 안됐다.
◆ 하나로예술단을 이끌고 힘들고 어려운 봉사활동을 하게 된 동기는?
하나로예술단에서 기존 양로원, 요양원에 목욕시키러 다니다 보니까 기존에 예술단공연 봉사자 들이 노래만 훌쩍하고 가는 모습이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악단장하고 그런 이야기를 내 비췄더니 그러면 예술단을 한번 운영해 보자고 제안해 그래서 운영하게 됐다. 동네에서 봉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손을 내밀어 봤다. 각설이, 노래, 난타 등 이런 것을 가르쳤다. 의의로 상당히 반응이 좋았다. 요양원에 가면 어머님들한테 노래만 부르지 말고 마음의 공감대를 이뤄서 그 어머님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고 그 분들이 병환자라고 해서 일부러 그렇게 된 환자가 아닙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회원들한테 항상 하는 말이 먼저 마음부터 기본 봉사 자세가 돼야지 겉으로 베푸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다행히 요양원에 계속 한 달에 무료공연 4~5번을 갑니다.
그래서인지 회원들이 단합이 잘 되고 회원들이 서로 이해하고 서로 하려고 앞장서 있습니다.
◆ 봉사활동을 30여 년간 하셨는데 보람 됐던 일은?
저희 아이들을 제가 입양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굉장히 무서워요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고 거칠고 폭력적이다. 제가 봉사활동 갈 때마다 오토바이 앞에 한명 태우고 뒤에 한명 태우고 요양원을 가는 모습을 보이고 요양원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 아이가 정말 바르게 자라서 시장 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런 점이 제일 보람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요양원이나 양로원에 가면 어머님이나 아버님들이 딸같이 눈물을 흘리십니다.
또 와달라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당신의 입에 들어 갈 것도 조그마한 사탕 하나를 입에 넣어 줄때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할 때 보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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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예술단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김덕예 하나로예술단장)[사진=모석봉 기자]
◆ 하나로예술단의 봉사활동 범위와 구성은 어떻게 됐는지요?
저희들은 우선은 개개인의 회비를 걷습니다. 처음에는 한 달에 2만원씩 걷다가 회비가 점점 많아져서 5000원을 줄여서 현재는 1만5000원을 걷습니다. 그 1만 5000원을 걷어서 하나로 사무실 월세 20만원씩 냅니다. 나머지는 불우이웃돕기, 소년소녀 가장 돕기 큰 행사를 지금까지 세 번 했습니다. 또 저희 회원들이 간부님들과 위원님들이 자발적으로 큰 행사할 때는 후원금을 20만원 또는 30만원씩 후원해서 그것을 알뜰하게 모금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 향후 봉사활동의 계획에 대해서 한 말씀?
저는 기존에 있는 봉사단보다 정말로 우리 어머님, 아버님 소외계층에 있는 저소득층, 정말로 가슴으로 가족같이 다가갈 수 있는 봉사를 하고 싶습니다. 제가 힘이 있을 때까지 우리 회원들 손을 맞잡고 봉사활동을 하겠습니다.
◆ 봉사활동에 동참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과 절차가 필요한지?
봉사활동에 동참하려면 우선 기본은 마음이 돼야한다. 남남끼리 만나서 각각 살아온 생각과 환경이 다 다르니까 남남끼리 구성원이 되려면 우선 이해와 사랑과 격려와 덕담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들이 회원이 돼서 서로 헐뜯고 미워하기 보다는 마음으로 진실 되게 해서 그래야 오래 갈 수 있습니다.
◆ 봉사활동하면서 가장 추억에 남았던 일화는?
어느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이었나 봅니다.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 할머니께서 시계하고 반지를 저한테 선물하셨습니다. 너무 고맙다고 나중에는 제가 몰랐었는데 그분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할머님이 저한테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채찍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또 어떤 할아버님은 제주도 서귀포에서 사셨다고 합니다. 그분 목욕을 시켜줬는데 남자 분 목욕시켜주는 분들이 없어요. 여자 분들이 할아버지 목욕을 시켜드리면 다들 안들어 가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거리감이 있고 꺼려집니다. 근데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했습니다. 쑥스럽고 부끄럽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닦아 드립니다.
그분이 아마 제주도에 별장이 있었던가 봐요. 별장을 저에게 기증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저는 그거는 필요 없고 다른 곳에 기증하라고 했습니다. 얼마후 그분이 정말 시에다 기증을 했더라구요. 그런것들이 추억으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