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tvN 금토드라마 '미생'(극본 정윤정·연출 김원석)은 케이블 드라마의 재발견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계약직으로 살아가는 장그래(임시완)의 시한부 삶과 '갑'들의 전쟁터에 던져진 '을'의 고군분투,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회사원들의 눈물 겨운 우정 이야기로 시청자의 공감대를 건드렸다. 그리고 시청자에게 아직은 부족한 배우, 혹은 익숙하지 않았던 배우들을 '발굴'하는 과정을 통해 '재발견'의 시간도 가졌다.
그 중심에는 김원석PD가 있었다. 김 PD의 별칭은 '스타 제조기'다. 그의 손을 거친 배우들은 이내 스타로 거듭나 우리나라 연예계의 한 줄기를 담당하기 때문. KBS2 '신데렐라 언니'(2010)에는 택연과 서우가, KBS2 '성균관 스캔들'(2010)에는 유아인, 송중기, 박유천이 있었다. 그리고 tvN '몬스타'에 출연한 용준형, 하연수, 강하늘 역시 다음 행보에 관심이 집중됐다. '미생'에서도 김원석PD만의 캐스팅 법칙은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신인과 아이돌로 드라마를 꾸미자는 것. 이번에는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축 처진 어깨와 자신감 없는 표정, 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장그래의 모습은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얻었다. '미생'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 캐릭터임이 분명했다. 드라마가 잘된 지금은 '미생'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사실 '미생'은 기획 당시 반신반의하던 시선이 많았다. 그만큼 캐스팅 난항도 이어졌다.
"장그래 역에 스타성 있는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많은 20대 남자 배우의 이름이 거론된 것도 사실이에요, 그중에 이제훈이 있었던 것도 맞고요. 하지만 꼭 이제훈만 거절한 건 아니예요, 다 거절 당했죠. 임시완이 장그래 역을 제안 받았다는 사실을 알기도 전에 소속사에서 먼저 거절했으니까요."
"캐스팅에는 다 인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다 하늘의 뜻이죠. 임시완이 캐스팅 제안을 받은 그 자리에서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있었던 거라고 봅니다. 임시완 캐스팅의 공은 캐스팅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결국 임시완에게 있는 거예요, 임시완이 자기의 복을 자기가 가져간 거죠."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짓던 김원석PD는 이내 "임시완과 드라마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았다. 임시완이 원톱 주인공을 할 수 있는 능력과 잠재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정말 기쁘고, 정말 많은 시나리오를 받고 있다고 해서 대견하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친구"라는 극찬도 잊지 않았다.
배우 이성민, 이경영 등 선배들의 탄탄한 연기는 후배 연기자들을 이끄는 힘이 됐다. 특히 이성민은 김원석PD가 가장 먼저 출연을 부탁했을 정도로 믿음이 있었던 배우였다. "보통의 스태프는 내가 만들어 놓은 복잡한 동선에 '이걸 어떻게 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미생' 스태프와 출연진은 그걸 즐기면서 했다. 특히 이성민이 가장 즐겼다. 이성민이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며 "후배들 역시 이성민에게 물어서 연기를 만들어 왔다"고 신뢰감을 표현했다.
묵묵하게 제 위치에서 연기해온 김대명(김대리 역), 전석호(하대리 역), 태인호(성대리 역), 변요한(한석율 역), 강하늘(장백기 역) 등은 '미생'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확실히 알렸다. 누군가에게는 '반짝 스타'로 여겨지겠지만 이들 모두 영화,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닦아왔다.
"어제(17일) 변요한이 우울해 하길래 이유를 물으니 두 신만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연출자로서 행복했죠. 그동안 어린 친구들을 많이 데뷔시켰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어요. 변요한이 성장했다는 느낌보다 내 동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젊은 배우가 가진 많은 것들이 예뻐 보여요. 변요한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역량을 제대로 발휘를 할 수 있는 좋은 대본을 만났고, 좋은 상대 연기자를 만난 거죠."
변요한에 대한 칭찬을 한참 하더니 이내 전석호에 대해서도 한 마디 붙였다. "영화를 보고 괜찮다고 생각해 만났는데, 연극을 하고 있어 출연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윤정 작가가 '먹히는 얼굴'이라고 해서 '꼭 출연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김PD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캐스팅과 더 만족스러운 배우들의 호연에 대한 감사와 기쁨이 묻어났다.
20일 종영까지 단 2회만을 남겨둔 '미생'. 작품이 시청자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데는 사실감 넘치는 표현, 에피소드의 분석만큼 김원석PD가 캐스팅을 위해 흘린 땀과 노력이 묻어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