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루블화 급락이 러시아 국내 경제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일부 지방 금융기관은 루블화를 달러화로 환전하려는 시민들이 몰리면서 환전업무를 중단했다. 식료품 등 인플레이션도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16일 러시아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후에도 최저치를 기록한 루블화는 17일 한 때 달러당 60루블 전반까지 회복하기도 했으나 반등과 하락을 반복하면서 61루블로 거래를 마감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러시아인들이 루블화보다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TV나 가전제품 사재기에 나섰고 일부 은행등은 예금인출사태(뱅크런)에 현금이 바닥났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도 루블화의 폭락으로 실물자산으로 갈아타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유럽비즈니스협회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 내 11월 신차 판매대수는 도요타 자동차가 전년 동월 대비 35% 증가했으며,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는 23.4% 늘었다. 현지 외국 자동차 업체들은 “최근 판매대수는 과거 10년 동안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미국 애플은 러시아 루블화의 급락에 따라 애플 사이트를 통한 아이폰6, 아이폰6 플러스 등의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이날 성명을 통해 "루블화의 극단적인 가치 하락에 따른 변동으로 제품 가격 재설정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1월에도 스마트폰 아이폰6와 아이폰6플러스의 판매가격을 25% 인상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루블화의 급락에 따라 러시아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비트코인 거래가 급증했다. 비트코인 거래 정보 사이트인 비트코인차트닷컴에 따르면 루블 가치가 사상 최저치로 내려갔던 지난 16일 루블-비트코인간 거래량이 최근 30일 평균보다 250% 증가하며 1년 중 가장 많은 수준을 기록했다. 러시아인들이 즐겨 이용하는 비트코인거래소인 BTC-e에서도 최근 수주 동안 비트코인을 사는 러시아인이 크게 늘었다.
수입품 가격의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도 심각하다. 모스크바의 대형 마트 등에서는 식료품 매장을 중심으로 10%정도씩 가격이 올랐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15일 올해 물가상승률을 10%로 예측했으나 그 후 루블화 하락과 대폭적인 수입품 가격 인상이 동반되면서 실제 물가상승률은 10%를 웃돌 것으로 보인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러시아 시민 대부분은 지난 1990년대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경험한 바 있어 이번 루블화 급락으로 혼란이 일어날 조짐은 아직 보이고 있지 않으며 정권에 대한 비난은 아직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