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지난 1959년 1월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으로 공산정부를 수립한 지 2년 만인 1961년 1월 쿠바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특별성명에서 “미국은 대(對)쿠바 관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위한 역사적 조치들을 취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존 케리 국무장관에게 즉시 쿠바와의 외교관계 정상화 협상을 개시할 것을 지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 년 동안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데 실패해 온 낡은 (대 쿠바)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할 것”이라며 “미국은 그동안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 왔지만 쿠바 정부가 자국민들을 억압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50년 넘게 지속한 대쿠바 봉쇄 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교를 단절한 1961년과 마찬가지로 쿠바는 여전히 카스트로 일가와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며 “우리는 똑같은 정책을 계속하면서 다른 결과를 낳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쿠바 국민에게도 도움이 안 된다”며 “어떤 나라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덧붙였다.
존 케리 장관도 별도 성명에서 “오늘 우리가 내디딘 발걸음은 조류의 방향을 바꾸는 데 따르는 위험과 비용이 우리가 스스로 만든 '이념의 시멘트'에 계속 갇혀 있는데 따르는 위험과 비용보다 훨씬 낮다는 우리의 확고한 믿음을 반영한다”며 “나는 60년 만에 쿠바를 방문하는 첫 국무장관이 되길 학수고대한다”고 말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도 이날 특별성명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로 양국 관계 정상화를 논의했다”며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는 오바마 대통령과의 직접 전화 대화에 앞서 양국 고위급 협의를 거쳐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현행 대 쿠바 봉쇄 정책을 대폭 완화할 방침이다. 수개월 내에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재개설해 양국 정부의 고위급 교류와 방문을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로베르타 제이콥슨 국무부 서반구 담당 차관보가 이끄는 대표단이 내년 1월 아바나를 방문해 미·쿠바 이민대화를 시작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문제에 이어 의료, 마약퇴치, 환경보호, 인신매매, 재난대응 등 상호 관심사도 쿠바 정부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케리 국무장관에게 쿠바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검토할 것을 지시했고 케리 장관은 곧바로 국무부 관련 팀에 검토를 지시했다. 또한 미국 재무부와 상무부에 쿠바 여행과 송금에 대한 규제를 개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가 인정하는 12개 분야(가족 방문, 공무상 방문, 취재, 전문연구, 교육, 종교, 워크숍 등 공공 활동, 쿠바 국민 지원, 인도적 프로젝트, 민간 연구·교육재단 활동, 수출·입 거래, 특정 수출 거래) 출입국 허가증을 받은 미국인은 쿠바를 방문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기업과 민간 분야의 여행은 당분간 규제가 유지될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연간 500달러로 제한된 기부성 송금한도는 2000달러로 인상됐다. 송금자 특별면허 제시규정도 폐지됐다.
쿠바에 대한 수출도 확대해 민간주택 건설자재, 민간기업용 상품, 농기계 수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쿠바 방문허가를 받은 미국인은 400달러 상당의 물품을 반입할 수 있게 됐다. 이중 담배와 주류는 모두 합쳐 100달러 이내에서 구입할 수 있다.
미국 기관들은 쿠바 금융기관에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허용하고 미국 국영 또는 공기업들은 제3국에서 쿠바인들과 금융거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쿠바 여행객은 미국 신용카드 및 직불카드를 쿠바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쿠바 국민의 정보통신망 접근 확대를 위해 미국 통신사업자들이 쿠바에서 상업용 정보통신 및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인프라와 시설을 구축하는 것도 허용됐다.
쿠바에 통신기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통신 시스템 업데이트 및 관련 서비스 품목의 상업용 수출도 가능해졌다.
이 외에 제3세계에 있는 미국 기업의 쿠바 내 서비스 제공 및 금융거래도 허용됐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20여분 동안 전화통화를 하고 국교정상화 추진과 수감자 석방 및 교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쿠바에서 간첩활동을 한 죄로 수감됐던 미국인 앨런 그로스(65)가 석방돼 귀국했다.
미국 ABC뉴스는 “지난 1년 동안 진행된 미국과 쿠바 사이의 막후 협상을 통해 그로스의 석방이 성사됐고 그동안 건강이 악화한 것으로 전해진 그로스의 석방은 양국 관계 개선에 실마리가 될 것”이라며 “미국 당국은 그로스의 석방에 맞춰 1998년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에서 현지 망명인사 등을 대상으로 간첩활동을 한 죄로 투옥된 이른바 '쿠바인 5명' 중 아직 풀려나지 않은 3명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석방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그로스는 미국 국무부 대외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의 하도급업체 직원이었다. 2009년 12월 아바나에서 현지 유대인 단체에 인터넷 장비를 설치하려다 체포된 후 2011년 쿠바 법원에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았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2009년 쿠바에서 체포된 미국인 앨런 그로스를 석방하는 대신 1998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첩보 활동을 한 죄로 투옥된 자국의 정보 요원인 '쿠바인 5명' 중 남아있는 3명이 귀환한다”며 라몬 라바니뇨와 헤라도 에르난데스, 안토니오 게레로 등 풀려나는 3명의 이름을 열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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