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치연 기자 =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삼겠다'는 SK그룹의 중국 사업 전략이다. 고(故) 최종현 SK 회장은 한국과 중국을 잇는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자처해왔다. 그가 생전 강조했던 중국 사업에 대한 인식은 이후 '차이나 인사이더'라는 SK의 중국 사업 전략으로 이어진다.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 2006년 기존 중국 사업 캐치프레이즈였던 '중국 내 제2의 SK 건설'과 '아·태지역 최고 기업'이 불분명하고 추상적인 전략목표라고 지적하며 '차이나 인사이더'를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로 삼자고 주문했다.
당시 최 회장은 "차이나 인사이더란 중국 내 중국 기업 리더들과 글로벌 메이저 기업들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는, 중국 내 생존과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역량과 자세를 갖춘 기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SK는 오랜 시간 중국 기업과 합자회사 구축을 비롯해 현지 업체들과 윈윈할 수는 협력관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최 회장이 강조했던 중국 내 '현지 기업화'는 장기화된 경영 공백과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여전히 구체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SK는 지난 2010년 7월 1일 중국 내 13개 계열사, 90여개 현지법인 체제로 운영되던 그룹의 중국 사업을 컨트롤할 지주회사인 'SK차이나'를 출범 시켰다. SK차이나는 부동산·환경·물류·문화 등 4개 주력 사업 추진과 함께 정유·통신·반도체 등 계열사별 중국 사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SK차이나는 출범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유명무실한 존재가 됐다. 최 회장의 구속 이후 SK차이나는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에는 SK차이나에 파견된 임원들과 주재원들도 대거 철수했다. 이후 SK는 SK차이나 CEO를 중국인으로 교체하는 등 현지화를 추진했지만, 최 회장의 공백을 메우긴 역부족이었다.
그나마 현재 각 계열사가 진행 중인 △석유화학(SK이노베이션) △도시가스(SK E&S) △반도체(SK하이닉스) 등이 성과를 내곤 있지만, 그동안 투자한 노력에 비하면 미약하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특히 최 회장의 부재가 장기화됨에 따라 시장 개척을 위한 중국 내 신사업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SK가 차세대 주력 사업으로 추진 중인 전기차 배터리 분야는 중국을 선제 시장으로 보고 진출했지만, 경쟁 업체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올해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 본격화를 위해 1월 베이징전공, 베이징자동차와 손잡고 '베이징 베스크 테크놀러지'를 설립하고, 지난 4월부터 실질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합작법인은 우선 베이징 현지에 올 하반기까지 연간 전기차 1만대에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팩 제조설비를 구축해 가동했다.
그러나 현재 합작법인은 중국 전기차 시장 공략을 위한 전초기지일 뿐, 실제 글로벌 메이저 업체와의 추가적인 대규모 공급 체결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중국을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시장으로 삼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면서도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SK의 '차이나 인사이더'의 전략적인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최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했던 '차이나 인사이더'는 현지 업체들과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파트너링'을 골자로 하지만, 현재 오너가 부재한 SK로써는 이러한 전략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분석에서다.
현재 SK는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경영 정상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룹의 미래를 좌우할 인수·합병(M&A)이나 구조조정에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중국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굵직한 M&A 매물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SK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SK가 중단한 태양전지나 연료전지, 실적이 미미한 전기차 배터리 분야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오너가 직접 투자를 결정해야 하는 중장기 사업"이라며 "그룹 내 주요 CEO들이 참석한 수펙스추구위원회가 운영되고 있지만 오너의 의지 없이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기는 쉽지 않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위기에 직면한 SK로써는 최 회장의 사면 가능성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복역기간이 600일을 넘어서는 등 대기업 총수로서는 가장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고 있고, 정부가 경제 살리기에 전념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기업인들에 대한 특혜성 사면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어 이마저도 낙관할 수 없는 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