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정말 빈털터리일까.
그를 기억하는 후배들은 ‘참된 공복(公僕)’이라고 표현한다. 공직자로써 올바른 판단과 청렴함. 또 사명감의 덕목을 갖춘 인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올해 초 공정부위원장직을 마지막으로 세종청사를 떠난 그가 10개월만에 위원장 내정자로 지목됐다. 당시 청와대가 발표한 장·차관급 11명에 대한 인사 중 예상 뛰어넘는 ‘朴의 깜짝 발탁’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공직사회 안팎에서는 공피아·관피아 등 논란 속에 투명한 길만 고집한 그의 공직길이 재평가됐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북 문경 출신인 TK 인사로 낙인을 찍고 있지만 현 정권에 측근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청렴 특기(特技)와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다. 아울러 지난 2003년 3월 이남기 위원장 퇴임 이후 11년여 만에 내부인사 발탁이 이뤄진 점도 환영 분위기다.
정 내정자는 내부발탁 인사로 공정위에서 잔뼈 굵은 실무통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35년 8개월간의 공직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공정한 시장 파수꾼의 역할을 이끌어야할 조직에서 불편부당한 윗선의 지시에 바른말을 던지던 그의 성향 탓이다.
전문성도 없는 정통 학자 출신이 관료 조직에 자리하던 당시 YES맨만 살아남는 분위기 속에서 NO라고 말한 그의 소신은 수개월간 칩거(대기발령)였다.
현재 공정위가 공정정책 등 조사업무가 외압에 흔들리지 않고 실무진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태도로 변화한 것도 NO맨이던 정 내정자의 역할이 컸다는 데 부정하는 이는 없다. 현 공직사회에는 원칙이 배재되고 규정을 무시하는 등 사명감 따위가 안중에 없는 정무인들이 허다하다. 책임과 의무를 던지고 회전문을 향해 있다는 뜻도 담겨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공직자의 올바른 자세는 국민을 섬기고 청렴함이 요구되는 인물이다. 이는 고위직이건 하위직이건 공무원들의 불변이자 사명이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 뻗는다 했던가. 전문성은 결여되고 낙하산 인사로 진통을 겪는 현 관료사회의 쇄신 요구에 정재찬 소식은 신선한 충격인 셈이다.
정 내정자는 차관 퇴임 당시 직원들에게 천천히 갈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일만 많고 승진이 어려운 극심한 인사 적체로 로펌과 기업 등에 눈 돌리던 후배들이 많아진 현상에서다. 성급한 마음으로 당장의 이익을 쫓기보단 마음에 여유를 갖고 사건처리에는 신중함을 기하라는 뜻도 담겨있다.
나름대로 소신껏, 맡은 임무에 충실하되 당장의 이익을 쫒아선 안 된다는 공직자의 자세를 마지막까지 역설하고 떠난 그다. 내놓으라하는 민간기업의 유혹을 마다하고 용돈 벌이하겠다며 한 지방대 강사로 뛴 것도 회자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도 부족한 면은 있다. 융통성과 정무감각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기본과 원칙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기본과 원칙에만 충실한 융통성 제로는 적이 많아질 뿐이다.
경쟁·카르텔·소비자·하도급 등 주요업무분야에 대한 전문성도 높이 평가되나 재벌 규제와 관련, 직접적 경험이 부족한 그로써는 심도 있게 봐야할 정책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며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소회는 ‘제 공직생활의 마지막 기회’라고 의미를 내포했다.
공정위가 제대로 된 조직으로 형성되기까지 굴곡진 세월은 그와 닮아있다. 재산보다 대출 빚에 허덕이는 고위공직자도 없다. 부위원장 자리를 떠나면서 남긴 바른 자세처럼 향후 3년도 이러한 평가가 나올지는 그의 마지막 공직자세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