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문제와 인권문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무원에 빠진 북한이 반(反)서방 진영의 핵심 국가로 떠오른 러시아와 유대를 강화하려는 과감한 시도라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향후 북러 간 정치군사협력이 보다 긴밀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북한이 최룡해를 러시아에 특사로 파견하기로 결정한 데에는 지난 10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한중정상회담에서 한국과 중국이 자유무역협정(FTA)타결을 선언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13일 제17차 아세안+3 정상회의를 공동 주재하면서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 희망 입장을 밝힘으로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감이 심화된 것이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정 수석연구원은 "최룡해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게 되면 김정은의 방러나 푸틴의 방북, UN에서의 한미일의 대북 인권 압력에 대한 북러 공조 방안 등이 주요 의제가 될"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최측근인 최 비서가 북한 최고지도자의 특사 자격으로 러시아를 방문하는 만큼 올해 들어 부쩍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이기 위한 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최 비서가 김 제1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위한 정지작업을 할 가능성이다. 김 제1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양국 밀월관계의 정점을 찍는 사건이 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1년 8월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모스크바 선언'을 채택한 바 있다. 앞서 2000년 7월에는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 위원장과 공동선언을 타결했다.
그러나 김 제1위원장은 집권 이후 외국 최고지도자와 공식적으로 정상회담을 한 적이 없다. 지난해 10월 차히야 엘벡도르지 몽골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도 두 사람의 정상회담에 관한 보도는 나오지 않았다.
김 제1위원장이 아직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지 않은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경우 러시아는 김정은 시대 북한의 확고한 우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최 비서의 러시아 방문은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의 핵 포기를 위한 국제공조에 동참하는 중국에 대한 우회적인 압박 메시지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이 러시아에 접근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북중관계를 적극적으로 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비서가 최근 북한 공식 매체의 호명 순서에서 군 서열 1위인 황병서 총정치국장을 제칠 정도로 위상이 강화된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경제를 넘어서는 양국의 포괄적인 협력관계 구축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과 러시아는 최근 공동으로 북한 내륙철도 현대화 사업에 착수하는 등 경제 분야의 협력을 급속히 강화하고 있으며 정치, 군사, 문화 분야에서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인권문제로 국제사회에서 궁지에 몰린 북한이 유엔총회의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을 앞두고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에 최 비서를 보내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 비서가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경우 유엔에서 한·미·일의 대북 인권문제 압박에 대응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공조 방안이 의제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러시아 특사 파견은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가 꽉 막힌 상황에서 전방위적으로 대외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연장선상에 있다.
북한은 지난달 21일과 이달 8일 두 차례에 걸쳐 억류 중이던 미국인 3명을 모두 석방하며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올해 9월에는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유럽 국가들과 몽골을 순방했으며 같은 달 리수용 외무상은 이란과 미국, 러시아를 잇달아 방문했다. 최근에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했다.
남북관계는 지난달 초 최룡해 비서를 포함한 '실세 3인방'의 인천 방문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듯했으나 대북전단 문제 등에 가로막혀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전략적으로 대외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출구로 북러관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