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우리 정부가 30일로 제안했던 고위급 접촉 제의를 거부함에 따라 사실상 제 2차 남북 고위급 회담이 무산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YTN 방송 캡처]
북한은 29일 새벽에도 국방위 서기실 명의의 전통문을 청와대 국가안보실 앞으로 보내 "고위급 접촉을 개최하겠는지, 삐라 살포에 계속 매달리겠는지는 남측의 책임적 선택에 달려있다"고 압박했다.
북한은 이 통지문에서 우리 측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대북전단 살포를 방임하고 있으며, 관계 개선과 대화의 전제인 분위기 마련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비난했다.
이는 지난 25일 청와대에 보낸 전통문에서 "고위급 접촉이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고 다소 우회적으로 언급했던 북측이 대북전단 살포 제한을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분명히 내건 셈이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의 태도는 단호하다.
정부는 이날 통일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서 "민간단체의 전단살포는 통제할 수 없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는데도 북한이 전단문제를 대화 분위기의 전제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남북관계 개선에 의지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정부는 또 "남북 간 대화를 통해 현안을 해결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측의 일관된 입장이나 부당한 요구까지 수용할 수는 없다"며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제한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일축했다.
정부는 고위급 접촉 개최 전 북한의 장외 여론전에 밀려 그들의 요구를 하나둘씩 들어주는 것은 협상 전략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28일 저녁 우리 측 고위급 접촉 수석대표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 29일까지 2차 접촉에 대한 북한의 분명한 입장을 요청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남북 간에 이 같은 견해차가 감정적 대립으로까지 번지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라는 체제는 최고 지도자 권위를 절대화하는 주체사상을 국가의 종교 이념으로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며 "북한도 남북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김정은의 권위가 공격받는 걸 막는게 우선 과제"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연내 고위급 접촉 개최는 물 건나갔다고 본다"며 "북측은 체제와 최고 존엄 문제를 최고 가치로 주장하고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상황으로 남북 간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당분간 남북대화 가능성은 작다고 전망한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최근 남북관계 외에도 대외 관계 개선에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전격적으로 다시 '양보'를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남북 대화에 나올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남북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면서도 자신들의 관심사를 사전에 의제화 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전략적 의도도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하지만 대북전단 문제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단기간에 남북이 접점을 찾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25일 임진각 대북전단 살포에 사실상 실패한 민간단체들이 전단 살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천명한 바 있어 대북전단을 두고 남북 갈등, 남남 갈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2차 고위급 접촉 위한 추가 조치 하지 않을 듯
우리측이 제안한 30일 고위급 접촉 개최는 무산됨에 따라, '10월 말∼11월 초' 고위급 접촉 개최의 성사 가능성도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임병철 통일부 대변인은 "당초 남북이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 사이에 2차 접촉을 하기로 합의한 만큼, 2차 접촉은 유효하지만 북한에 추가 제의를 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또 2차 고위급 접촉을 위한 추가적인 대북 제안에 대해서도 현 단계에서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 대변인은 "논평으로 우리 입장을 밝힌 만큼 현재 별도의 조치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며 "다음 2차 고위급 접촉이 개최되기 위해서는 북측으로부터 입장 표명이 있어야 될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남북은 지난 4일 황병서 등 북한 고위급 3인방의 깜짝 방문을 통해 '10월 말∼11월 초'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개최에 합의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