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 '쌓기'가 신공인 이 남자 '둔갑술'을 부린다. 플라스틱은 그에게로 와서 꽃이되고, 조명이되고 성전이 된다. 시장에서 배우고 쓰레기장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의 주문은 '生生活活(생생활활)'.
이름만으로는 모르겠다면 광장에, 백화점앞에, 공원에 설치된 플라스틱 '과일나무' '거대한 연꽃'을 떠올리면 '아~' 할 것이다.
'생생활활'. 툭 터진 공간(광장-공원)에서 특히 해외에서 종횡무진, 게릴라같은 작품을 쌓고 풀고 펼치고 거뒀다. 수많은 비엔날레와 해외 유수 미술관 기관들에서 프로젝트를 섭렵해왔다. 최근 문화역서울284에서 플라스틱으로 예술을 만든 '총천연색'전으로 서울역을 알록달록 플라스틱 소쿠리(바구니)로 물들인 장본인이다.
90년대 전시장에 플라스틱바구니를 거대한 탑처럼 쌓아올리며 '하찮은 사물'의 위대한 존엄성을 예술로 승화시켜 화제를 모았던 그는 '작가'가 아니라고 스스로 주장했었다. "나는 작가가 아니에요. 디자이너가 더 맞을 걸요? 아니면 건축가도 가능하겠군요.”(2009년 인터뷰중)
"누구한테도 간섭받기 싫어한다"는 그는 제도권 미술시장밖에서 '생생활활'했다.
그런데 그가 변했다. 2014년 10월 24일 서울 청담동 박여숙화랑에 등장한 그는 '키치(Kitsch)적인 작가'가 아닌 그냥 '현대미술가'라고 불러달라고 주문했다.
그동안 플라스틱 뚜껑, 소쿠리 등 버려진 물건으로 대량생산과 물질주의 소비문화를 참을수 없는 가벼움으로 꼬집어왔다. '예술은 미끼와 삐끼'라고 여겼다. 주제도 빨리빨리, 빠글빠글, 짬뽕, 날조, 날림, 색색등이었다. 때문에 '쌈마이'(3류라는 뜻과 싸보인다는 속어) 작가라는 별칭도 있었다. (순수 예술인들과는 좀 차이가 있었다는 얘기다)
인테리어, 건축, 영화 미술감독, 무대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업해온 전방위 예술가를 몰라본다는 서운함이 배어있는 눈빛이었다.(그래서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그런데 1년에 3분의 2 정도는 해외에 체류하며 '공공미술가'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가 상업화랑과 손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병에 100만원이 넘는 최고급 와인 돔페리뇽과 콜라보레이션전을 연 그는 "이번 전시는 전업작가로, 본격적으로 예술을 하겠다는 의미가 있다"며 "이제 썬데이 아티스트에서 에브리데이 아티스트로의 선언"이라고 했다. 돔페리뇽과의 전시는 11월 개인전에 앞선 맛보기전이다.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용기를 쌓아만든 조명같은 '연금술' 작품은 크리스탈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이미 모두 팔렸다고 한다. 연금술과 함께 선보인 '세기의 선물'도 형형색색 화려하기는 마찬가지다. 2000년 국보 제 2호인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FRP로 모방해 요란스럽게 금칠을 해놓은 이 작품은 고대그리스의 코린트식, 이오니아식 주두가 반복적으로 쌓아 올려진 기둥의 형상으로 재탄생한 작품이다.
돔페리뇽 샴페인병은 쌓아 올려져 조명처럼 빛나고, 병을 깨 만든 조각들은 뭉쳐져 사리나 구술이 되어 세워졌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겉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여도 각각의 것들은 서로 원인이 되어 무한한 연관관계를 보여준다. "어제없이 어떻게 내일일 있나"는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된다"고 말했다.
최정화는 "돔페리뇽의 컨셉인 광물성 질감 관능성이 내가 해왔던 작업과 일치한다"며 "내 작품은 누가 언제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다 달라진다"며 사각의 흰 전시장에 들어온 자신의 작품에 만족감을 보였다."문화역서울284의 '총천연색'전이 '최정화를 알리는' 전시라면, 이번 전시는 '최정화의 작업을 알리는' 전시가 될겁니다."
그가 11월 11일부터 박여숙 화랑에서 '타타타(Tathata): 여여(如如)하다'로 개인전을 연다.
최정화는 "그동안 플라스틱, 소쿠리 작가였다면 이제는 유리, 나무, 돌 등 모든 재료를 사용할 예정"이라며 "민속, 무속, 현대미술의 융복합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내 이름이 정화(淨化)입니다. 앞으로 正化된 예술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반자도지동(反者道之動). 사물은 극에 달하면 그로부터 반전하는데 '그것이 곧 도의 움직임'이라는 노자의 말처럼 지천명을 넘긴 최정화의 반전, 둔갑술이 기대된다. (02)549-7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