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대항해 시대를 살았던 캡틴을 상상한다. 15~17세기의 대항해 시대는 지중해의 작은 바다에 살던 유럽인들이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찾아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건넜던 시기다. 물길을 알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희미한 달빛과 별빛, 바람뿐인 시대에 그들은 노를 저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운명을 달리했다. 지금도 대서양 혹은 태평양 속에는 캡틴과 선원들의 자취가 남아 있을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의 성공 이후에는 신대륙 찾기보단 지도 제작에 열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도를 만드는 데 힘을 쏟았다. 캡틴 쿡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제임스 쿡은 항해를 통해 뉴질랜드가 2개의 섬으로 나뉜 것을 발견했고 오스트레일리아 동해안을 탐사한 후 문명인이 살 수 있는 땅임을 확인했다.
항해사가 항해 노트를 그려오면 화가와 판화가, 학자들이 세밀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유럽 사람들은 ‘물길’을 알아냈다. 지도가 명확해질수록 물살에 희생되는 선원들은 줄어들었다.
지도가 흔해진 시대다. 클릭 몇 번으로 국내 여행지는 물론이고 영국이나 미국 수도의 거리와 상점까지 상세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지도가 부족하다. 대항해 시대가 도래할 때처럼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기업들을 위한 지도 말이다.
예를 들어 IT 업계의 신대륙은 사물인터넷(IoT)이지만 사물인터넷까지 가는 길은 명확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아침이면 저절로 에스프레소를 내리는 커피머신, 더운 여름 귀가 시간을 체크해서 집안을 시원한 온도로 유지하는 에어컨 등에 대한 이미지는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 개발이 요구되는지 알지 못하는 기업들도 있다.
유능한 리더는 지도력을 보여야 한다. 기술 등을 바탕으로 시장의 풍향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사물인터넷 시대의 주요 요소인 네트워크, 디바이스, 서비스, 플랫폼, 보안 중에서 어떤 분야도 독일이나 미국 등 사물인터넷 기술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나라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
다행히 스피드한 DNA를 가진 국내 기업들은 사물인터넷 관련한 다양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세계의 사물인터넷 지도를 그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무기는 막강한 네트워크 부분의 인프라와 기술력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신망을 토대로 중장기 네트워크 부분에서는 통신사들의 5G가, 근거리 네트워크는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NFC(Near Field Communication) 등의 기술이 활용될 수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근거리 무선통신 및 센서모듈 기술 역시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대항해 시대와 비교해보면 다른 국가보다 탁월한 항해술과 천문학 기술을 갖춘 셈이다.
네트워크 부분의 기술력은 스마트홈뿐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방법으로 활용이 가능해 더욱 유망하다. 각종 매장이 몰려있는 복합 쇼핑몰에서 매장 앞을 지나가는 고객에게 각종 매장 정보와 쿠폰을 전달할 수 있고, 사람들이 번잡한 대형 경기장에서는 스마트폰으로 가장 가까운 화장실 위치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걸음단위의 정밀한 위치 파악이 가능한 블루투스 기능 덕분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비콘’이라고 한다. 향후 몇 년 안에 ‘비콘’이 정밀한 지도를 그릴 전망이다.
6세기 전, 항해사의 목숨을 단보로 그려진 지도가 세상을 바꿨다. 대항해 시대는 놓쳤지만, 이번에는 한국이 세계의 지도를 먼저 선점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