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팔판동에서 기자와 만난 신민아는 언론의 찬사에도 들뜬 기색 없이 “걱정했던 언론 시사에서 반응이 좋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쉴 뿐이었다. “신민아의 재발견”이라고 칭찬해도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고, “상대 배우가 연기를 너무 잘해 샘이 나지는 않았느냐”고 슬쩍 자극해도 감정의 동요 없이 특유의 보조개가 파이도록 은근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조곤조곤 할 말을 했다.
“제가 출연한다니까 기대치가 낮았나 봐요. 평소처럼 연기했는데 주위에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유난히 광고나 화보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사실 연기로 무언가를 보여줄 기회도 적었고요.”
24년 만에 새 옷을 입은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 영화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2014 버전은 원작과 똑같이 연인이 부부가 된 후 갈등하다 후회하고 다시 서로를 보듬는 이야기를 그린다. 배우와 시대만 바꾼 그저 그런 로맨틱코미디라고 생각하면 오산. 찰나의 시간도 허투루 쓰는 법이 옹골지다. 세태를 반영한 에피소드는 짝 없는 솔로가 봐도 공감할 만하고, 코미디적 요소의 웃음 적중률은 만족스럽다.
원작의 성적은 훌륭했다. 한국 로맨틱코미디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당시 전국 관객 20만명을 동원했다. 제12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제29회 대종상 신인감독상 등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고 박중훈과 당시의 최진실을 당대 최고의 스타로 부상시켰다.
“원작이 있는 영화를 리메이크 하는 것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에요. ‘리메이크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럼에도 꼭 하고 싶었어요. ‘경주’ 전에 이미 출연을 결정하고 오래 기다렸어요. ‘네가 잘해 낼 수 있겠니?’라는 우려도 많이 들었죠. 잘해 내야겠다는 마음이 욕심이나 열정으로 드러나 좋은 작품이 나온 것 같아요.”
시나리오에는 영민(조정석)과 미영(신민아)이 다급히 안방으로 들어가는 설정이었는데 신민아의 아이디어로 봐도 봐도 웃음이 나오는 ‘바지 내리는’ 장면이 탄생했다. “예고편에 들어갈 정도로 명장면”이라고 말하니 인터뷰 중 가장 밝은 미소를 보이며 기뻐했다. “내 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라며 으쓱하더니 공은 조정석에게로 돌렸다.
“사실 저보다는 조정석 씨 공이 크죠. 분명 연기하기 부담스러울 수도,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텐데 제 의견에 따라 줘서 감사할 뿐이에요. 현장 모든 스태프와 연기자가 ‘원작만큼 잘해 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모두 한마음이었기 때문에 의견을 많이 나누고 상대 생각도 존중했죠.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로 보이겠지만 정말 많이 노력하고 고민하면서 만들었어요.”
신민아는 “남자 팬티를 하루에 그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라며 “한 컷 찍을 때마다 조정석 씨가 ‘팬티 좀 갈아 입을게요’라고 말했다”고 전하며 활짝 웃었다.
부담감은 원작의 장면을 그대로 리메이크할 때 가중됐다. 질투에 눈이 먼 영민이 자장면을 맛있게 먹는 미영의 얼굴을 그릇에 처박는 장면이나 미영이 집들이에서 망신스러운 노래 실력을 뽐내는 장면이 그렇다.
“자장면 신은 원래 초반에 잡혀 있었는데 너무 부담스러워서 뒤로 미뤘어요. 원작에 있는 장면이라 고민도 많이 하고 싶었고, 친해진 다음에 찍고 싶었거든요. 부담에 비하면 쉽게 끝난 편이에요. 잘 보시면 고개를 들었을 때 제가 뭔가 우물우물 씹고 있을 거예요. 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입에 남은 자장면이 많아서 계속 씹다 보니 재미있는 장면이 나왔죠.”
노래하는 장면은 녹록지 않았다. “다른 배우들 앞에서 노래해야 하는 게 민망했냐고요? 더 심각한 건 웃기지 않았다는 거예요. 원래 음치가 아니라 ‘음 이탈’이 하이라이트인데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거예요. 촬영하면 할수록 목이 풀려서 노래는 점점 더 잘 불러지고….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다 정말 노력으로 ‘만들어진’ 신이에요.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찍은 신에서 폭발할 때가 많지만 이번 작품은 고민하고 생각한 만큼 관객들이 웃어 주셨어요, 기분 좋습니다. ‘매 순간 고민을 많이 해야겠구나’ 느끼게 해 준 작품이에요.”
“‘조정석 씨가 이렇게 연기하겠지’라는 예상은 모두 빗나갔어요. 종종 ‘이게 웃길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완성작을 보고 나니 ‘천상 연기자구나’ 생각했죠. 코미디를 뻔하지 않게, 똑똑하게 비트는 재주가 있어요.”
열네 살에 모델로 데뷔한 신민아도 어느덧 30줄에 접어들었다. 반평생을 연예인으로 산 셈이어선지 앞자리 수가 바뀐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저에게 집중하려고 해요. 욕심도, 목표도 많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순간 내가 편안하고 행복해야 연기도 잘 나온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20대보다 감정이 풍부해지고 경험도 많아졌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레 더 다양한 저를 보여 주는 밑거름이 되겠죠. 30대가 됐다고 해서 조급하거나 없던 욕심이 생기지는 않네요. 저는 20대에도 열심히 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