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신희강 기자= 정부가 지난달 30일 '쌀 관세화율'을 513%로 결정했다고 국회 상임위원회에 보고한 가운데, 법정 절차 없이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WTO에 양허표 수정안을 통지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쌀 관세화 보고'와 '양허표 수정안 통지'를 진행하지 않거나 요식적으로 추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정의당 김제남 의원에 따르면 통상당국(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외교부 등)은 ‘법제업무 운영규정(대통령령)’ 등에 따라 법제처에 조약안에 대한 심사를 받아야 하나, 아직까지 법제처에 심사요청을 한 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고 역시 요식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부는 통상조약을 추진하는 경우에는 ‘통상조약체결절차법’에 따라 통상조약의 △목표 및 주요내용 △추진일정 및 기대효과 △예상 주요쟁점 및 대응방향 △주요국 동향 △경제적 타당성 등을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산업부의 상임위 보고문서는 수정안의 주요 내용 등을 담고 있을 뿐, 조약체결의 목적, 기대효과와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핵심적인 유관쟁점인 ‘의무수입물량 처분권’, ‘긴급수입제한조치’, ‘도하개발아젠다(DDA) 향후 대응’ 등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상태다.
아울러 통상당국은 WTO에 쌀 관세화 통보를 앞둔 상태에서 쌀 관세화가 국회 비준동의의 대상인지 여부도 판단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국회 비준동의 절차는 '조약'에 대해서만 진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WTO 검증기간을 거친 후에 최종안을 놓고 국회 동의권 유무를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쌀 양허표 수정안이 아직 국가 간에 합의된 조약이 아닌 우리나라의 제안에 해당되며 법제처 심사 대상인 ‘조약안’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산업부는 이날 제출한 양허표 수정안에 특별긴급관세(SSG), 저율관세할당(TRQ) 물량‧세율 등에 대한 부과 근거를 명시했으며, 향후 관계법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DDA 협상 농업분야에서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관세율을 정해 WTO에 통보하는 것 자체가 조약행위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쌀 관세율의 조정이 변경될지언정, 본질적 내용인 쌀 관세화가 변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회 동의 여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제남 의원은 "통상정책에 대한 국회보고가 요식적으로 변하고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관행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관련 법정을 개정하고 WTO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거나, 국회에 쌀 관세화 사전 비준 동의를 얻어 추진하는 절차를 밟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윤상직 산업부 장관과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산업위)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전체회의에 각각 출석해, 관세화·관세율 결정 전에 국회에 상세하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점을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