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은 왕세제 이금(한석규)이 김택(김창완)을 필두로 한 노론의 압박에 못 이겨 ‘맹의’에 수교한 뒤에야 왕위에 오르는, 모멸감 가득한 영조(한석규)의 모습으로 그 문을 열었다. 영조에겐 “내 발목을 잡는 망할 놈의 문서”이고 노론에겐 “왕권을 위협하는 강력한 무기”인 맹의를 두고 벌어지는 치열한 공방전이 초반부의 주된 내용이었다.
‘비밀의 문’ 후반부를 장식한 것은 영조의 선위(임금의 자리를 물려줌) 파동이었다. 영조는 실제로는 그럴 마음이 없으면서도 신하의 충성심을 저울질하고, 왕권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선위 카드를 남발했다. 이날 영조는 “선위하겠다”고 9번이나 말했는데 때마다 다르게 표현하는 한석규의 연기는 첫 방송의 하이라이트였다. 안부를 묻듯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기도 했고, 밥상을 뒤엎고 동물처럼 울부짖었다가, 비열하게 이죽거렸고, 애처럼 울기도 했다. 아들 이선이 5살 때부터 무려 15년간 선위 카드를 남발한 영조와 그때마다 “선위할 뜻을 거두어 달라”며 울부짖는 왕세자 이선의 교차 편집은 놓쳐서는 안 되는 명장면이었다.
‘세책(돈을 주고 책을 빌려보는 일)’이라는 소재도 시청자의 구미를 당겼다. 법을 어기고 은밀하게 이뤄지는 세책 현장과, 국가의 눈을 피해 지하 공방에서 책을 만드는 장면이 그랬다. 삼삼오오 모여 받아쓰기하듯 책의 내용을 받아 적고 실로 묶어 책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빠르게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