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최신형·김정우 기자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으로 국회가 올스톱됐다. 19대 국회 들어 여야 모두 ‘합의의 정치’를 외쳤지만, 집권여당의 일방통행식 국회 운영과 야당의 초강경 노선이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불렀다. 툭하면 광장 정치를 일삼는 야권과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한 집권여당이 맞물리면서 ‘리더십 공전’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아주경제는 총 3회 기획을 통해 특정 정당이 특정 노선만을 추종하는 퇴행적 정치 문화의 원인을 되짚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적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다. 과거에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당시에는 여야 정쟁에 대한 ‘단순 비판’에 그쳤다. 하지만 세월호 정국을 거치면서 정치와 정당에 ‘왜 존재하는가’를 묻고 있다. 예전과는 비판의 결이 다르다는 점, 그것이 무섭다.(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보좌관)”
민생 법안 처리를 위한 25일 국회 본회의와 ‘2013 회계연도 결산안’, 26일 분리 국감 등의 파행으로 ‘정치 실종’ 상태가 계속된 데다 여야 모두 이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없이 대증요법에만 의존하면서 국회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비정상화’가 계속되고 있다.
28일 현재 국회 본회의에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민법 개정안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안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등 93개의 민생법안이 표류하고 있다.
법제사법위원회 제2법안소위심사에 기약 없이 심사를 기다리는 법안의 개수도 43개에 달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여야 모두 ‘적폐’ 척결을 외쳤으나, 성적표는 F학점에 그친 셈이다.
◆대통령 호소에도 국회는 공전 中…‘진짜 민생 VS 가짜 민생’ 싸움까지
문제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8을 기록한 소비자심리지수(CCSI)가 한때 105까지 하락하면서 서민층 경제에 한파가 찾아왔지만, 여야 모두 정국 주도권 잡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대와 30대는 3포(취업·결혼·출산)세대, 4050세대는 비정규직 등 노동의 유연화와 가계부채, 6070세대는 상대적 빈곤에 각각 노출됐지만,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세대별 계급사회’를 돌파할 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민생법안 처리에 적신호가 켜지자 박근혜 대통령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직접 나서 정치권에 호소했다. 자칫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6일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등 19개의 민생법안을 열거하며 민생법안 처리를 강력히 촉구했다.
최 부총리도 같은 날 정부서울청사에서 6개 부처 장관들과 함께 긴급 호소문을 발표하며 △기초생활보장법 △국가재정법 △조세특례제한법 △소득세법 개정안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 △클라우드컴퓨팅 발전 및 이용자보호에 관한 법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등의 조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하지만 여야는 ‘유민 아빠’ 김영오씨가 단식 중단한 선언한 이날 ‘진짜 민생 대 가짜 민생’ 대결을 펼치며 정쟁의 끝을 보여줬다.
새누리당은 이날 민생 프레임을 고리로 새정치연합을 향해 “민생 법안 처리에 나서라”고 대야공세를 폈다.
그러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이목희 의원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여당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과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등은 가짜 민생 법안”이라고 맞받아쳤다.
◆유종필·이필상 “與野 극한 대립, 경제에 부담”
전문가들은 여야의 극한 대치 상황이 극심한 사회적 양극화에 노출된 서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다만 박근혜 정부도 ‘낙수 효과’에만 기댄 대기업 집중구조에서 벗어나 서민을 위한 거시적인 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유종일 한국경제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날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최경환호(號)가 노렸던 것은 심리적인 효과였다”면서 “여야의 대치로 경제효과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정쟁이 경제 심리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세월호 참사 직후 최우선 과제였던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과 경제 활성화 등이 후(後)순위로 밀렸다는 자성론도 나온다. 여야 대치로 민생 법안 처리의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다.
이필상 서울대 초빙교수(경제학·전 고려대 총장)는 이와 관련, “세월호 참사 이후 투자 심리와 소비심리 등이 주저앉았던 그때 정부와 국회가 경제 살리기 입법과 정책을 추진했어야 했다”며 “시기를 놓치면서 경제가 더욱 어렵게 되는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밝혔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여야의 정쟁과 정국 주도권 싸움은 ‘모르핀(마약성 진통제)’과 같다. 한번 이기면 지지층의 환호에 도취돼 그간의 비판을 잊어버린다”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적 신뢰 상실로 한국 정치가 격변기를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