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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대표적인 유학자들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한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이 있던 곳에서다.
문화재청과 발굴조사단인 서울문화유산연구원(원장 김일규)은 2012년 도봉서원터 발굴조사 결과 수습한 이들 불교용구 관련 유물 일체를 21일 오전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공개했다.
이 과정에서 조사단은 도봉서원 터 중심을 이루는 제5호 건물터(동서 12.63m, 남북 12.74m)가 원래는 영국사라는 사찰의 중심 건축물인 금당 혹은 대웅전을 그대로 활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이 건물터 아래에서는 영국사를 세울 당시에 부처를 공양하고자 묻은 것으로 보이는 불교 용구를 넣은 청동솥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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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숫대야 형식인 청동유물인 세(洗), 향 피우는 그릇인 향완, 굽달린 사발 모양 그릇인 대부완, 발우(鉢盂), 대접, 숟가락과 같은 다른 청동유물도 발견됐다.
조사단은 수습 유물 중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함께 배치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덧붙였다.
금강령에는 오대명왕상(五大明王像)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이런 문양은 국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출토된 금강령은 그동안의 금강령 가운데 가장 정교하고 뛰어난 수작"이라고 설명했다. 물고기형 탁설(鐸舌, 흔들면 소리가 나도록 방울 안에 매다는 것)은 구슬을 물고 있는 모습이 매우 독특하다. 아울러 현향로와 뚜껑합(유개합) 등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유적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 외에 향완은 고려 시대의 전형적인 전기의 양식을 지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조사단은 이들 유물을 2012년 발굴 당시 공개했어야 했지만 조사를 거의 완료하고 철수하려는 시점에 현장 정리과정에서 발견된 데다 금속 유물이라 보존조치가 시급해 그것을 완료한 지금 공개하게 됐다고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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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제 금강령 세부 모습]
▶도봉서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년)의 『율곡전서(栗谷全書)』와 고산자 김정호(古山子 金正浩, 미상~1866년)의 『대동지지(大東地志)』 등 여러 문집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1573년 정암 조광조(靜庵 趙光祖, 1482~1519년)를 추존하기 위해 옛 영국사(寧國寺)의 터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도봉서원은 임진왜란으로 전소하였다가 1608년 중건된 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어내기까지 약 260여 년간 유지되었다. 1903년 지방 유림이 제단을 복원하고, 1970년에 사우(祠宇)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