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학창시절에는 언제나 음악이 함께했다. 공부보다는 가사 쓰기를 좋아했고 그 영향 때문이었는지 청년 때는 소설에 재능을 보였다. 지난 2011년 장편소설 ‘도화촌기행’으로 1억원 고료, 제3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을 받았다.
소설가에 길을 잠시 보류한 그는 일간지 기자로서 새로운 발을 디뎠다. 음악적 소양이 깊은지라 대중음악기자로 일하며 여러 아티스트들과 호흡했고 잠시 묵혔던 열정이 다시금 지펴지게 됐다. 그렇게 돌고 돌아 10여년 만에 정진영의 음악은 세상에 빛을 보았다.
지난달 19일 발매된 ‘오래된 소품’에는 타이틀곡 ‘비 오던 날 도착한 편지’를 비롯해 ‘꼬마를 기다리며’ ‘창백한 푸른 점’ ‘눈물(流星雨)’ 연주곡 4곡과 보너스 트랙 ‘코리언 펑크(Korean Funk)’까지 총 5곡이 수록됐다.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은 줄곧 만들어왔어요. 단지 세상에 내놓지 않았을 뿐이죠. 취재를 위해 만나던 뮤지션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주곤 했는데 ‘곡이 참 좋다’는 칭찬을 해주더라고요. 근데 문득 그 말에 진정성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친한 레이블 대표를 찾아가 투자해보면 어떻겠냐고 대뜸 물어봤어요. 자본이 투입되는 순간,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허접하지만 너보다 허접한 애들이 많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중간 이상은 가느냐’고 하더니 고개를 끄떡거리더라고요. 그 말에 용기를 얻고 발매를 결심하게 됐어요.”
단호하게 먹은 마음이었지만 막상 음악을 만들어보니 뮤지션의 고통을 몸소 알았고 저예산의 한계도 느꼈다. 믹싱 과정에서의 완성도가 귀에 거슬렸지만 “나보다 허접한 것들이 더 많다”는 말이 신기하게 만큼 희망을 불어넣었단다. 만족도를 물어보자 “처음치고 괜찮은 출발”이라고 말을 아꼈다.
칭찬에 머리를 조아리며 부끄러워하는 겸손에 반해 호평 일색이다. 가수 선우정아는 “보컬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손쉬운 수단이지만, 그 수단에 기대면 이야기는 재미있으나 음악적으로 아쉬운 작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 앨범에는 그런 관례와 편견을 모두 깨고 연주와 편곡으로만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순수한 음악들이 담겨 있다”고 말했고, 대중음악평론가 성시권은 “어린 시절의 동심과 청소년기의 방황, 청년기의 사랑 등 인생사의 다양한 감정을 사계절에 빗대 서정적으로 표현한 국내 초유의 콘셉트 뉴에이지 앨범”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도 에피톤 프로젝트, 알레그로, 안녕하신가영, 고래야, 프롬 등이 진심 어린 칭찬을 쏟아냈다.
“제가 평소 존경하던 음악가들이 저의 앨범을 좋게 들으셨다니 몸둘 바 모르게 좋기도 하면서 귀가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럽기도 해요. 진부한 말이지만 다음에 더 잘하라는 채찍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앨범에는 그가 가진 첫 사랑의 추억, 별똥별을 보며 떠오른 감정, 무의식의 잔상 등 그가 느꼈던 감정이 여과 없이 담겨있다.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연상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은 그가 앨범 배열마저 세심하게 신경 썼음을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5곡, 25분여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간다.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글 쓰는 직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가 가사가 없는 뉴에이지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다음에는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하자 “지금 음악과는 다른 과격한 헤비메탈 음악이 나올 수도 있다”고 예고했다.
서정적인 이번 앨범 색을 빗대어보았을 때 상상조차 어려운 헤비메탈, 다음에는 짧은 머리를 기르고 무대 위에서 ‘로큰롤(Rock and Roll)’을 외칠까? 아직 서른셋, 첫 단추를 무사히 마친 정진영의 다음 앨범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