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미군의 이라크 철수를 공약으로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오바마 대통령이 31개월 만에 이라크 공습을 승인했다. 이는 오바마 정권의 이라크 정책이 큰 전환점을 맞이한 것을 의미하며, 오바마 대통령이 왜 이러한 결단을 내렸는지 그 배경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6일 미국-아프리카 정상회담이 종료된 직후 마틴 뎀프시 합참의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리무진에 급히 합승하면서 백악관에 도착하기까지 5분 동안 이라크 정세가 얼마나 악화되고 있는지를 브리핑했다고 전했다.
이때는 미국이 지난 6월 말에 이라크에 군사고문단을 파견한 지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다음 날 오바마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해 90분 동안 이라크 정세에 대해 논의했다.
군사 개입에 부정적이던 오바마 대통령의 생각은 뎀프시 합참의장의 브리핑을 듣고 변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변화시킨 것은 뎀프시 합참의장의 ‘대량살육’이라는 단어였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라크 북부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쫓긴 쿠르드인 등 소수민족 4만명이 산에 갇혀 먹지도 마시도 못하는 상태가 계속돼 어린이 40명이 사망했고, 무장단체가 여성을 학대하고 있다는 정보도 들어왔다.
인권을 중시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러한 상황을 방치하고 대량살육이 현실이 되면 국제사회의 미국에 대한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또 이라크 무장단체가 세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던 이라크 북부 아르빌은 미군의 군사고문단이 주둔하고 있고 미국의 석유회사도 진출해 있는 곳이다.
만약 미군 군사고문단에서 희생자가 발생한다면, 이는 2012년 9월 주 리비아 대사관에서 발생한 미국영사관 습격사건의 재현이라는 지적을 받게 됐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우연히도 바로 전날 아프간의 수도 카불에 있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아프간 병사가 국제치안지원부대(ISAF)에 대해 총기를 난사해 미군 장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군이 2001년부터 주둔한 아프간에서 전사한 병사 중 가장 계급이 높았던 그의 죽음은 미국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시리아에 대한 군사 개입을 막판에 철회해 당시 "군 최고사령관의 위신을 손상시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있어서 이라크 정책의 실패는 시리아 군사 개입 철회 때 이상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군사 개입을 망설이고 이라크 정세가 더욱 악화된다면, 오는 11월에 예정된 중간선거에서 “겁쟁이”라고 야유하던 공화당의 호재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난 7일 오후(현지시간) 또다시 NSC를 열고 외국을 순방 중이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망장관을 영상으로 회의에 참석하도록 했으며,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 공습 승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9시 30분(현지시간), 카메라 앞에 선 오바마 대통령은 긴급 성명에서 “제한적인 공습을 승인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이 신문은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긴장된 표정이었으며 대통령 자신이 가장 하기 싫었던 말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라크 공습 승인’ 발표 후 9시간 뒤에 미군은 이라크 북부지역의 이슬람 무장단체 근거지에 대해 공습을 시작했다. 이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완전 철수한 지 2년 반이 지난 뒤 실시한 미국의 첫 군사행동으로 기록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