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광복절]7년 만에 개최되는 한일재계회의, 양국 교류 불씨 살린다

2014-08-13 17:01
  • 글자크기 설정

1965년 4월 21일 국교정상화 반대 데모 속에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개최된 한·일 경제간담회 모습[사진=전경련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탄환보다 침투력이 강한 것은 상품입니다.”

1964년 4월 21일, 도고 도시오 단장 외 45명의 일본 사절단과 한국경제협의회(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측 100여명의 국내 기업인이 참석한 가운데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한·일경제간담회의에서 한국측 단장을 맡은 김용완 회장(제4, 5, 9~12대 전경련 회장, 경방 회장 역임)은 개회사에서 한·일국교 수립을 위한 양국 기업인들이 가져야 할 신념을 이같이 밝혔다.
이에 도고 단장은 답사에서 “‘한·일간의 불행한 과거지사’를 생각할 때, 돌팔매를 몇 개 맞지 않고 어떻게 국교 정상화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은 이런 각오로 금번 귀국을 방문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열린 양국 기업인들간의 공식 행사에서 밝힌 두 사람의 개회사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양국 관계 복원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진=전경련, 게이단렌 제공]


한·일 국교수립은 사실상 기업인이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 집권 시절인 1945~1960년에는 철저한 반일정책으로 일관해 대일관계는 공백에 가까웠고, 민주당 정부는 장면 총리가 미국에서 공부한 탓에 일본 정·관·재계 인맥이 거의 없었다. 장 총리는 한·일 국교 정상화 움직임을 본격화 하면서 이 역할을 재계 경제인들이 담당해줄 것을 권유했다. 교육배경이나 사업상의 이유 등으로 일본인들과 오랜 연계를 갖고 있는 경제인들이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이렇게 시작된 노력은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 시기인 1965년 6월 22일 양국은 국교 정상화 조약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굴욕적인 조약이라는 평가도 받고 있으나 적어도 경제계는 한·일 관계 복원으로 얻어낸 대규모 차관과 기술을 받아들였고, 이를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실현해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정경분리라는 대 원칙 아래에서 시작된 양국 기업간 협력이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인들이 일본측에 구걸하거나 몸을 숙이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솔직한 비판과 진정한 반성 위에서 새출발을 촉구하는 등 당당한 자세로 일본 기업인들을 대했다. 일본측도 한국 기업인들의 비판을 겸허히 수용했고, 역사적 비극을 뛰어넘는 경제적 협력을 이어갈 것을 약속했다. 또한 전경련과 일본 게이단렌간 교류는 지속적으로 이어져 1980년대 한·일재계회의로 발전됐고, 회의를 통해 다양한 현안에 걸쳐 폭 넓은 논의가 이어졌다.

하지만, 2007년 11월 13일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제23회 회의가 개최된 후 양국 기업인들간 공식 관계는 단절됐다. 정치·외교관계의 악화로 경제계 모임조차 부정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한·일재계회의가 중단되면서 양국간 교역 및 투자가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한국경제의 중국 의존도 심화 속에 일본 경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어쩌면 1964년 첫 모임을 가졌던 당시보다 현재 양국 기업간 관계는 더 멀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7년 만에 한·일제계회의가 열린다. 오는 12월 1일 장소는 서울 여의도 전경련 회관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회의가 재개된다는 것 이상으로 단절된 양국간 통로가 열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내년은 한·일 국교수립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라는 점에서, 위기에 놓인 상황을 기업인들이 풀어 나간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따라서, 허창수 전경련 회장과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게이단렌 회장 모두 1964년 첫 회의 때를 회상하면서 이번 회의를 준비할 것으로 보인다. 허 전경련 회장은 양국 간의 장점을 결합해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4세대형 경제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역내 경제통합을 가속화하기 위한 민간기구인 ‘아시아 비즈니스 서밋’의 확대 발전을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게이단렌 회장을 맡은 사카키바라 회장도 취임 일성으로 “(게이단렌이) 한국 중국과 일본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만큼 양국간 경제게 관계 개선을 위한 큰 틀의 제안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더불어 한·일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아도 재계를 중심으로 양국의 경제 교류는 지속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부활 속에 한·일 기업간 관계는 갈수록 느슨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양국 기업간에는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정치와 경제를 구분지어야 하며, 경제적 교류는 더욱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